[쿠키 연예] 지난해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팬클럽 문화를 리얼하게 재연해내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 작품에 등장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이러했다.
배경은 1998년 골든디스크 시상식. 행사장엔 당시 라이벌 구도를 구축한 H.O.T와 젝스키스, 두 팀의 팬클럽 회원이 운집했다. 이들은 대상 수상자로 자신의 ‘오빠’가 호명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대상의 영예를 안은 인물은 성인가요 ‘사랑을 위하여’를 부른 가수 김종환(49)이었다. 뜻밖의 발표에 10대 소녀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다 결국엔 망연한 얼굴이 돼 눈물을 훔쳤다.
드라마 속 장면처럼 90년대 중후반 김종환의 인기는 대단했다. 당대의 아이돌인 H.O.T 못지않았다. 96년 발표한 ‘존재의 이유’가 히트하며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이듬해 내놓은 ‘사랑을 위하여’로 정상급 가수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김종환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90년대 중후반은 외환위기 때문에 온 국민이 힘든 시기였잖아요? 그때 제 노래가 대중에게 위로가 돼준 거 같아요. 저는 ‘나의 이야기’라고 만든 노래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노래들이 어느 순간부터 ‘국민의 이야기’가 돼있더라고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란 걸 느꼈죠.”
김종환은 1983년 옴니버스 앨범 ‘음치들의 합창’에 첫 자작곡을 수록하며 가요계에 입문했다. 정규 1집을 발표한 건 2년 뒤인 85년이었다. 하지만 ‘존재의 이유’가 히트하기 전까지 그는 긴 무명 생활을 겪어야 했다. 최근 발매된 그의 정규 8집은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이자 굴곡 많았던 자신의 30년 음악 인생을 풀어낸 음반이다. 신보엔 타이틀곡 ‘남남으로 만나서’를 비롯해 총 15곡이 담겼다.
“앨범을 틀어놓으면 전반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노래들이 중심이 된 음반이에요. 자평하자면 사람의 마음을 다림질해줄 수 있는 음악들이죠.”
김종환은 30년 음악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출세작인 ‘존재의 이유’가 히트했을 때를 거론했다. 그가 털어놓은 96년 당시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했다.
“음반이 나왔을 때 혼자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 ‘DJ 박스’를 찾아다녔어요. ‘DJ 박스’는 일종의 방송실 개념인데, 이곳에선 시장 전체에 음악을 틀어주죠. 딱히 홍보할 방법이 이것밖엔 없더라고요. ‘존재의 이유’ 앨범을 들고 한 달 넘게 ‘DJ 박스’를 찾아다니다 결국 몸살이 났어요. 4~5일 쉬고 다시 시장에 나갔죠. 그런데 시장에 제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불법 복제 테이프를 파는 리어카 앞엔 사람들이 제 음반을 사겠다고 줄을 서 있었어요. 정말 감격스러웠죠.”
그는 지난 30년을 “내겐 선물 같았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펼쳐질 30년에 대해선 큰 욕심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저는 가수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들도 받았고 큰 공연도 해봤잖아요? 이제부턴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