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시험 수험생의 불법 약물 복용 실태가 드러난 데 이어 현직 경찰·소방·군 공무원도 불법 스테로이드 약물을 구매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 수사 결과 군부대에서도 이런 불법 약물을 주문해 구매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불법 스테로이드 약물 구매자 명단’에는 서울 부산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126명이 256차례 유통업자로부터 불법 약물을 구입한 내역이 기록돼 있다. 이들은 식약처가 장기간 수사 끝에 적발해 검찰이 지난 1일 기소한 불법 약물 밀반입 브로커들로부터 약물을 구입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 주로 체력증진용 약물들을 사서 본인이 투여하거나 주변에게 되팔았던 이들이다.
식약처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이 명단의 주소지에는 서울의 경호부대, 강원도의 포병부대, 충남의 육군 항공학교 등 군부대 3곳이 포함돼 있다. 군부대 거주자가 브로커들에게 불법 약물을 주문한 것이다. 군부대 구매자들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모두 답변을 거부하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단에 기재된 다른 구매자 A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약물을 다량으로 사서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며 “경찰이나 소방관, 군인에게도 많이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이란 건 (사가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매자들은 주로 헬스 트레이너 등으로 일하면서 알음알음 스테로이드 약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건넸다고 털어놨다. 수도권 헬스클럽에서 수년간 일했다는 한 트레이너는 “헬스클럽이나 체육관을 중심으로 약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인다”며 “대부분 유통과 판매가 불법인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 중개업자는 “보디빌딩 선수들이 대회에 나갈 때 단체로 준비하면서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불법 약물이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약물을 유통하거나 판매하면 약사법 위반으로 처벌되지만 구매자의 경우 처벌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한 트레이너는 “(약물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데 체육관에 다니는 사람들이 계속 문의해 구입했다”며 “회원들이 부탁하면 추천해주는 식”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복용하려고 구매했다는 다른 트레이너는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사서 먹는 것은 법에 걸리지 않는다더라”며 “운동선수나 공무원 등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식약처는 불법 약물과의 전면전을 벌일 태세다. 그동안 스테로이드 등의 성분을 건강기능식품에 첨가해 판매하는 ‘식품’ 분야를 주로 수사해 왔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약물’ 형태의 유통 조직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약이나 주사 등의 전문의약품 형태로 약물을 불법 유통하는 경우까지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오·남용이 금지된 약물이 의약품 형태로 불법 유통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처음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문동성 조성은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