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가객’ 최백호, 첫사랑을 노래하다

‘낭만가객’ 최백호, 첫사랑을 노래하다

기사승인 2013-11-19 14:45:00

[쿠키 연예] 중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소년은 학교에 가기 위해 교표(校標)도 안 붙은 교모(校帽)에 새로 산 교복 차림으로 기차에 올랐다. 부산 명륜동에 위치한 학교(동래중)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소년의 머릿속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중학교는 어떤 곳일까.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그런데 일광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기착지 중 한 곳인 기장역에 닿았을 때 소년은 평생 못 잊을 순간을 마주하게 됐다. 객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승객들 중 한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 차가운 눈망울을 가진 소녀였다. 소년은 첫눈에 반했고 첫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이 소년은 바로 가수 최백호(63)다. 최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난생 처음 사랑에 빠져 허둥대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심각하게 짝사랑했어요. 집 앞에도 찾아가 서성이곤 했죠. 매일 밤마다 그 애에게 보내는 편지도 썼어요. 지금 제가 노랫말을 작사할 능력이 있는 건 아마도 그때 매일 편지를 썼던 경험 때문일 거예요(웃음).”

이러한 러브 스토리는 최근 발매된 그의 음반 ‘첫사랑’에 그대로 담겨 있다. 앨범명과 동명의 타이틀곡 ‘첫사랑’의 가사는 이러하다. ‘처음 그 순간 젖은 눈동자/ 가슴에 생채기로 남았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내 앞에 너 하나만 남았지/…/ 이제는 멀어진 세월 그리운 첫 사랑.’

“지난 초가을에 이 곡을 썼는데 제가 만든 노래지만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요. 이틀 뒤에 (기타리스트) 함춘호(52)씨에게 연락해 곧바로 녹음하게 됐죠.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60대 이상인 분들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추억을 되새기게 되는, 그런 노래가 됐으면 좋겠어요.”

앨범엔 ‘첫사랑’을 포함해 단 두 곡만 실려 있다. 나머지 한 곡의 제목은 ‘부산에 가면’. 싱어송라이터 에코브릿지(본명 이동명·35)가 만든 곡으로 은은한 피아노 소리에 최백호의 그윽한 음색이 포개진 노래다.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고운 머릿결을 흩날리며 나를 반겼던/ 그 부산역 앞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어디로 가야 하나 너도 이제는 없는데….’

“노래를 듣는 순간 느꼈어요. 이건 내가 불러야 하는 곡이라고. 노래에 등장하는 부산역, 광안리, 달맞이 고개…. 전부 저에겐 추억이 서려 있는 장소예요. 마치 내 과거를 옮겨놓은 노래 같았어요.”

최백호는 1977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많은 노래를 히트시켰지만 그의 최고 히트곡은 95년 발표한 성인가요 ‘낭만에 대하여’다. 이 노래는 중년 남성들 마음을 뒤흔들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 최백호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 최백호의 행보를 보면 이전과는 달라진 부분이 많다. 2011년 11월 기타리스트 박주원(33)의 음반에 ‘방랑자’라는 노래를 부른 게 발단이었다. 그는 성인가요와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는 뮤지션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엔 재즈 피아니스트 한충완(52)과 함께 재즈 공연을 열었고, 그해 10월엔 재즈 탱고 삼바 등이 뒤섞인 월드뮤직 계열의 음반을 발표했다. 지난달엔 까마득한 후배인 아이유(본명 이지은·20)의 음반에 참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주원씨를 만난 게 계기가 돼 지난 2년간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죠. ‘하드 트레이닝’을 받은 느낌이에요. 음악을 다시 배운 기분이기도 하고요. 저는 제가 부르기 편한 노래만 만들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간 했던 음악과는 다른 노래들을 익혀나가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2011년 8월 최백호를 만났을 때 그는 노래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축구감독, 수필가, 조각가, 영화감독…. 그때로부터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꿈들은 여전히 유효했다.

“제가 원래 한 가지 일만 꾸준히 하는 성격이 못 돼요. 지금 제 마음은 공기로 꽉 찬 풍선이에요. 곧 터질 거 같아요. 아마 내년쯤이면 그간 했던 일과는 다른 작업에 도전하게 될 거 같아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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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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