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그게 어떤 미술관인데 서울대 출신만 바글바글?

[친절한 쿡기자] 그게 어떤 미술관인데 서울대 출신만 바글바글?

기사승인 2013-11-30 10:15:01

[친절한 쿡기자] 미술동네가 시끄럽습니다. 잡음의 진원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소격동 옛 국군기무사령부 자리에 개관한 서울관의 개관 전시를 두고 말들이 많아요. 기획 특별전 가운데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이 논란의 발단이 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기획된 이 전시는 작가 39명의 작품 59점으로 구성됐습니다.

전시 기획은 정영목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가 맡았고요. 39명의 참여 작가 중에서 32명이 서울대 출신입니다. 이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개관전이 서울대 미대 동문전이냐. 서울대 미대 교수 출신인 정형민 관장의 의중에 따라 서울대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출품된 것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전시에 임옥상 작가 등 사회참여적인 내용의 작품이 배제돼 외압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개관식에 참석하기 앞서 청와대 관계자가 미리 전시장을 둘러보고 임 작가의 작품 등을 빼라고 지시했다는 것입니이다. 미술관 측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처음부터 걸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죠.

특히 개관 행사에 한국미술협회 등 미술계 주요 단체장에게 초청장을 잘못 보내는 바람에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상태입니다. 초청 대상에 대한 신상정보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아 일부 미술단체는 신임 단체장이 아닌 전임 단체장에게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단체의 경우 문제를 제기하자 미술관 측은 “고의성이 전혀 없는 단순한 행정착오”라며 실수를 인정했으나 앙금이 남아 있고요.

미술인들은 경복궁 옆에 서울관이 들어서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서울관 개관전이 특정 학연 중심으로 꾸며져 실망스럽다며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서울대 미술관 분관’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확산되자 국내 미술인 3만500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미술협회(이사장 조강훈)가 정형민 관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미술협회는 지난 27일 발표한 성명에서 “20년 가까이 기다려온 미술인의 열망과 바람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현대미술 현장의 다양성을 파기하면서 오직 조직 이기주의적 독선과 불통의 폐쇄 행정만 난무하고 있다”며 “특정 입장의 미술권력 재생산에 몰두하고 있는 정 관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미술협회가 밝힌 서울관 건립의 역사는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술계는 기무사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죠. 미술인의 열망이 이어져 2008년 9월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발기인 대회 겸 창립총회가 개최됐습니다. 당시 노재순 미술협회 이사장을 비롯해 원로 작가들이 주축이 돼 153명의 발기인이 나서고 서명운동까지 벌였죠.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미술관 조성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건립 과정에서 4명이 사망하는 화재까지 겪으면서 가슴 졸이며 기대하고 꿈꿔왔다는 것입니다. 미술협회는 우여곡절 끝에 건립된 서울관이 특정 학연이나 인맥으로 전시가 이뤄진다면 세계적인 미술관은커녕 부끄러운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시 참여 작가 선정은 기획자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서울관이 자신만의 색깔을 내지 못하고 편 가르기 식이 됐다면 잘못입니다. 서울관의 정체성이 궁금합니다. 미술시장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놓인 미술계가 이런 일로 반목하고 갈등한다면 한국미술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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