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미디어비평]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연출 장태유 극본 박지은)가 매주 TV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첫회를 시작한 지 불과 한달만에 ‘마의 시청률’ 25%대를 육박하고 있다. 22일 방송분에서는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의 죽음을 연상하는 극적 반전이 시청자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
‘별그대’는 간만에 보는 전형적인 ‘판타지 드라마’다. 지난 2010년 11월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같이 여심을 두드리는 판타지 장르다. 당시의 ‘현빈 신드롬’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 여성시청자들은 별그대의 ‘판타지 러브’에 빠져들고 있다.
판타지(Fantasy)는 말 그대로 ‘공상 혹은 상상, 또는 상상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드라마 플롯 또는 드라마의 주요 구성요소로 매직(magic)과 초자연성을 이용하는 비현실적 장르’이다.
별그대의 판타지 키워드는 많다. 미지의 별과 시공의 초탈, 은색구두(신데렐라의 상징), 400년을 뛰어넘는 인연,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 그리고 강력한 초능력이다. 모두 드라마 전면에 깊히 배어있다.
별그대는 한마디로 젊은층과 여성층의 내면을 파고들 드라마적 흥행요인을 모두 갖추고 있다. 높은 시청률이 보여주듯 제작진의 전략적 의도는 잘 들어맞았다. 젊은층, 특히 여성들의 가슴속 로망을 판타지로 모두 화면에 깔아놓았다.
캐스팅도 절묘했다. ‘제2의 현빈’ 신드롬을 일으키는 아이돌 김수현을 기용하고, 게다가 남성들의 로망 한류스타 전지현을 전격 캐스팅한 것도 고공 시청률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시청자들이 식상해버린 막장의 요소나 고답적 틀을 벗어나려는 창의적 노력이 엿보인다. 톡톡 튀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은 마치 서로 충돌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극적 반전으로 몰입도를 고조시킨다.
먼저 캐릭터 연출을 보자. 주연 도민준은 미지의 별에서 온 것으로 설정했다. 별은 꿈을 상징한다. 첫회 분에서는 조선 광해 1년인 1609년 9월 강릉땅 산길에 외계인의 인공위성이 내려앉더니 꽃미남이자 초능력의 ‘외계인’ 도민준이 등장한다.
이어 400년을 넘도록 늙지 않는 불멸의 꽃미남은 재력과 강력한 청력과 시력, 순간이동 능력까지 갖출 초능력 ‘슈퍼맨’으로 설정되어 있다. 더구나 미래의 일을 미리 내다보는 초능력까지 갖췄다. 하지만 언젠가 고향의 별로 돌아가야 하는 만큼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하지만 속마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이율배반으로 자신을 묶어놓았다. 그러니 가슴속 마음과는 달리 사랑엔 애써 시니컬할 수 밖에 없다.
도민준을 매니저로 부르는 천송이(전지현 분). 국민요정으로 불리는 톱여배우다. 어려서부터 톱스타가 되다보니 학교 대신 촬영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독함과 튀는 괴팍함의 상징적 인물이다. 연예인 특례입학으로 대학생이 되었다. 강의 중 리포트를 베껴냈다가 시간강사 도민준에게 수모당했으나 이로 인해 과거 인연을 되짚으며 점차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로 발전해간다. 그러나 편법으로 입학한 사실이 들통나자 국민적 비판을 받고 드라마 주인공의 자리도 중학교
동기인 유세미(류인나 분)에게 빼앗기면서 도민준과 일상적 부대낌이 시작된다.
400년의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이야기는 그다지 시청자들에게 낯설지는 않다. 지난 2003년 3월 성유리 소지섭 주연의 20부작 SBS의 ‘천년지애’와 비슷한 포맷이다. 부여 공주 출신의 성유리가 현대로와 소지섭과 만난 뒤 시공적 차이를 사랑으로 풀어간다는 판타지 드라마다.
2012년에는 고 김종학 PD가 연출하고 김희선이 열연한 SBS 드라마 ‘신의’ 잔상도 아직 남아있다. 이 드라마는 고려시대 최영(이민호 분)이
강남의 성형의사이자 깍쟁이 ‘서울여자’ 유은수(김희선 분)를 만나 660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설정이다. 별그대는 과거보다 현실이 주 무대이지만 신의는 주로 과거 고려시대가 시공적 배경이다. 이민호와 김희선이란 톱스타가 열연했으나 신의는 당초 기대만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별그대는 다르다. 매우 비슷한 설정이면서 오히려 카툰같은 가공의 요인들이 더 많다. 자칫하다 축지법을 쓰는 듯 순간이동하는 황당한 대목에선 절로 웃음이 나올 법하다. 그런데 황당스토리가 오히려 시청자를 진지하게 당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별그대는 판타지 소설 고유의 구성요건들을 창의적 기법으로 잘 엮어 놓았다. 다시 말해 마치 영화 ‘해리포터’ 같이 판타지 요소들을 씨줄과 날줄로 잘 엮어놓은 극본과 연출이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층, 여성들은 자신이 꿈꾸던 로망을 모두 갖춘 드라마를 통해 현실도피를 하듯이 드라마 50분간 두 캐릭터에 자신을 함몰시켜버리게 한다.
현실은 엄혹하다. 시청자들은 지금 별그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외모와 지적 능력을 갖추고 게다가 재력을 갖춘 꽃미남 도민준과 같은 남자가 나를 바라보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심리다. 또 괴팍하고 매사에 튕기는 톱스타 여배우 천송이는 현실에서 우상이다. 그런데 톱스타의 뒷 일상에 감춰진 인간적 고뇌와 일탈이 남성층에 어필하는 대목이다. 빼어난 외모의 ‘스타일리스트’인 전지현이 마치 ‘엽기적인 그녀’에서 보여준대로 톡톡 튀는 온몸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모두들 자신의 현실에서 탈출을 꿈꾼다. 초월적 존재를 갈구하는 심리적 욕구는 판타지드라마의 시청률을 위로 추동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만큼 소설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드라마 중독성은 강력하다. 마치 1980년 전후로 미국이 수퍼파워 지위를 잃고 경제난에 빠지자 힘겨운 미국인들이 만화같은 영화 ‘수퍼맨’시리즈에 열광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별그대는 이제 중반을 넘어 정점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첫회에서 외계인의 출현, 400년의 시공간 의 초월, 초능력 등의 어색한 엮임이 다소 낯설었지만 갈수록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로 변신해가고 있다. 1월 22일 저녁 기록한 24.5%(닐슨코리아 집계) 시청률은 동 시간대 KBS2의 ‘감격시대’(9.6%)나 MBC의 ‘미스코리아’(7.1%)나 일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별그대는 갈수록 ‘로맨틱 드라마’ 요인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디테일한 구성과 창의적 연출기법을 좀더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회에서 시청자들에게 숨이 멎는 듯한 몰입을 가져온 고도의 파노라마 촬영, 그리고 ‘정지와 동작’의 화면합성은 ‘멈춘 시간속 별여행’이란 별그대의 주제를 잘 드러내 주었다. 이렇게 하나의 씬으로도 드라마의 주제를 보여준다.
반면 매회 주인공들의 협찬성 패션시계와 점퍼, 코트등은 시청자 몰입도를 다소 떨어뜨린다. 제작여건상 이해할 수는 있으나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로맨틱 판타지의 구성요소에 더욱 치중할 필요가 있다.
판타지 드라마는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갖는다. 자칫 별그대가 실재(實在)하는 현실세계로부터의 도피와 일탈의 심리를 부추켜서 시청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판타지 드라마가 갖는 사회심리학적 의미가 무엇일까. 별그대가 워낙 높은 시청률에다 오래만에 보는 판타지드라여서 잠시 사족을 붙여보았을 뿐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