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경찰서는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111억여원을 빼돌린 혐의(사기·유가증권 위조)로 국민은행 직원 박모(42) 진모(38)씨를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과 공모해 범행을 도운 국민은행 직원 7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국민주택채권은 임대주택 건설과 저소득층 주택구입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국민은행 본점 채권 담당자였던 박씨는 2010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소멸시효가 임박한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현금 111억8000만원으로 바꾼 뒤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44억원 가량은 경찰이 회수했고 나머지는 주식투자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내부감찰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박씨는 자신이 보관하던 국민주택채권 서식을 컴퓨터와 스캐너, 컬러프린터 등으로 위조했다. 해당 지점장 직인은 위조된 서식에 오려붙였다. 정교하게 위조된 것도 아니었지만 공모한 직원 7명이 주택기금부, 비서실 감찰반, 각 지점 담당자여서 2451건의 위조 채권은 일사천리로 현금화됐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 직원들이 모두 짜고 벌인 일이어서 정교하게 위조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범행이 이뤄진 3년9개월 동안 꼬리를 잡히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무기명 채권의 특성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무기명채권은 채권자가 기재되지 않고 양도 절차도 필요하지 않아 거래가 자유롭다. 국민주택채권은 만기가 5년과 20년으로 길고 상환일부터 5년이 지나면 돈을 찾을 수 없다. 만기가 길어 고객이 보유 사실을 잊기 쉽지만 고객 이름이 없어서 은행이 고객에게 “채권이 곧 소멸된다”고 공지할 방법도 없다.
박씨 등은 이런 점을 이용해 이미 고객이 찾아간 채권도 일련번호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현금화하기도 했다. 박씨 등의 범행은 이들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한 영업점 직원의 제보로 드러났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