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시청률의 마법사가 신통치 않다. 흥행 보증수표의 위력도 반감됐다. 손자뻘인 동명 배우가 더 유명해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세대와 시대를 불문하고 노련하고 세련된 필력으로 숱한 국민 드라마를 내놓았던 김수현(본명 김순옥·71) 작가의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가 시청률 10%대 답보 상태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MBC ‘사랑이 뭐길래’(1991·64.9%), KBS ‘목욕탕집 남자들’(1995·53.4%), SBS ‘청춘의 덫’(1999·53.1%), 2000년대 KBS ‘부모님 전상서’(2004·36.2%), SBS ‘내 남자의 여자’(2007·38.7%) 등 기록적인 최고 시청률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릐시청률 20% 못 넘나=지난해 11월 시작한 ‘세결여’는 시청률 10.4%(이하 닐슨코리아 기준)로 출발, 줄곧 10% 안팎의 시청률을 보이다 지난달 26일 14.3%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하지만 지난주 다시 시청률이 소폭 하락했다. 김 작가는 SBS ‘인생은 아름다워’(2010), ‘천일의 약속’(2011) 등 2010년대 들어 발표한 작품들이 첫 회 시청률 보다 7%포인트 남짓 상승한 시청률로 막을 내리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 40부작 ‘세결여’가 이미 3분의 2 지점을 넘어섰고 동시간대 경쟁 중인 MBC ‘황금무지개’와 KBS ‘정도전’이 시청률 10~15%를 점유하고 있어 김 작가 특유의 뒷심을 감안하더라도 20% 돌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결여’는 시청률 부진도 예상 밖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화제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그동안 김 작가는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동성애, ‘천일의 약속’은 30대 여성의 치매, ‘무자식 상팔자’는 미혼모 등 사회적으로 파격적인 소재를 내세워 이목을 끌었다. 여성들이 밀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 맞춰 대화방이 생겼고 관련 게시물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세결여’는 결혼과 이혼, 재혼을 반복하는 주인공을 통해 달라진 결혼관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쉽사리 먹혀들지 않고 있다. 대중성이 약하고, 어렵고 무겁다는 반응들이 많다.
릐너무 어렵다 VS 어려워도 수작=대다수 시청자들은 ‘세결여’의 긴장감과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전 드라마들에 비해 제목이 구체적이다 못해 결론을 미리 알려주는 스포일러에 가까워 극 전개와 갈등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문이 아닌 단문형, 연극에 가까운 문어체, 빠른 말투로 쉴 새 없이 퍼붓는 속사포 대사 등 김 작가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특징들을 SBS ‘따뜻한 말 한마디’ 등 다른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악재로 꼽힌다. 가수 서태지와의 결혼과 이혼, 정우성과의 열애 등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사랑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이지아의 스타성과 연기력이 생각보다 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직 드라마가 종영 전이고 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김 작가는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자기복제를 경계하고 사회적 어젠다를 제시하는데 전혀 소홀함이 없는 작가”라며 “기존 작품들이 진한 가족애라는 다소 보수적인 가치에 중점을 뒀다면 ‘세결여’는 가족 해체 과정에 놓인 현대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가치에 포커스를 맞춘 수작”이라고 강조했다.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씨도 “현대 여성이 처한 모순적인 상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며 “이혼과 재혼, 비혼 등이 아주 흔해진 시대에 마치 결혼이나 이혼을 서사의 종착지처럼 다루는 여타 드라마들에 비해 매우 진보적인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