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 부족으로 회의장 밖 대형 룸에서 스크린을 통해 초조하게 하원 전체회의 진행상황을 지켜보던 200여 한인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달 버지니아주 상원 소위원회에서부터 시작된 동해병기 법안의 의회 절차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2012년에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버지니아주 상원 문턱에서 좌절한 것을 고려하면 2년여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의 서명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가 당초의 ‘거부권 행사’ 뜻을 최근 번복함에 따라 사실상 7월1일부터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과서에는 ‘일본해(Sea of Japan)’와 ‘동해(East Sea)’가 함께 표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법안 통과는 미국의 주정부에서 동해의 병기사용을 규정한 최초의 사례라는 의미가 크다. 미국 연방정부가 견지하는 이른바 ‘단일지명’ 원칙이 주 차원에서 수정된 것이다. 교민 사회의 노력에 따라 다른 주에서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일본 정부가 로비업체를 고용하고 주미 일본 대사가 매콜리프 주지사를 만나 ‘법안 통과 저지’를 부탁하는 등 무리수를 둔 것도 이번 법안 통과가 ‘선례’가 될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이다.
법안 통과 의미는 주 하원 내 유일한 한국계인 마크 김(민주) 의원이 “한인들의 힘과 미국 민주주의의 힘을 알린 사건”이라며 “이것은 끝이 아니다. 중대한 시작이 돼야한다”고 말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일단 버니지아주에서 동해병기가 현실화되면 버지지아를 포함해 7개주에서 동해를 병기한 지도가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가 특정 지역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도를 별도로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를 위한 한인들의 활동을 주도해온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의 피터 김 회장은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이 초당적인 의지를 갖고 법안을 통과한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번에 우리가 활동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전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노골적인 우경화 바람 속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 과거사와 영토를 둘러싼 분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교민들이 독자적으로 ‘외교전’을 이끌어 승리했다는 의미도 있다. 워싱턴 주재 한 일본 특파원은 이번 법안 통과를 이끈 한인 조직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내며 피터 김 회장에게 “자신이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말해 달라”며 날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아울러 미국 내 한인들의 조직역량이 강화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법안통과 과정에서 한인단체들은 조직적으로 버지니아주 의원들과 주지사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데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이는 이번 사례뿐 아니라 향후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에도 큰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날 의사당에는 TV아사히, 도쿄TV,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에서 20여명의 일본 취재진이 몰렸다.
워싱턴=국민일보 쿠키뉴스 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