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한국시간)까지 진행된 피겨 단체전과 남자 싱글, 페어, 아이스댄스 등 여자 싱글을 제외한 모든 종목의 결과를 살펴보면 신기록이 쏟아진 것이 눈에 띈다.
우선 아이스댄스에서는 쇼트·프리와 종합 점수 모두 역대 최고점을 갱신했다. 아이스댄스 금메달을 차지한 메릴 데이비스-찰리 화이트(미국)는 쇼트댄스에서 78.89점을 얻어, 종전 기록(77.66점)을 경신한 데 이어 프리댄스에서는 116.69점을 기록하며 종전 기록(113.69점)을 3점 이상 끌어올렸다. 종합 점수도 195.52점으로 최고기록(191.35점)을 뛰어넘었다. 아이스댄스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한 테사 버츄-스코트 모이어(캐나다)도 프리댄스 114.66점으로 종전 최고기록보다 뛰어난 점수를 받았다.
페어스케이팅과 남자 싱글에서는 프리스케이팅과 종합 점수의 종전 기록은 깨지지 않았지만, 쇼트프로그램 기록이 진일보했다. 페어스케이팅 금메달을 차지한 타티야나 볼로소자르-막심 트란코프(러시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84.17점을 받아 올해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자신들이 작성한 83.98점의 역대 최고 기록을 뛰어넘었다. 남자 싱글에서 일본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하뉴 유즈루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사상 최초로 100점대를 돌파, 101.45점으로 자신이 지난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세운 99.84점의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최고점 기록이 나오지 않은 지점에서도 점수가 후하게 주어지고 있다는 단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남자 싱글 은메달을 차지한 패트릭 챈(캐나다)은 프리스케이팅에서 점프 실수를 연발했지만 감점은 세 곳밖에 받지 않았다. 예술점수(PCS)는 무려 92.70점을 받았다. 단체전 여자 싱글에서 쇼트프로그램·프리스케이팅 모두 1위를 차지한 러시아의 ‘신성’ 율리야 리프니츠카야는 러츠 점프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지만, 불과 한 차례 지적에 그쳤다.
심판 판정이 전체적으로 후해지면서 '점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치올림픽에서 나온 기록들을 제외해도, 여자 싱글을 제외한 모든 종목의 종전 최고점은 2013-2014시즌에 작성된 것이었다. 올 시즌 개막 전에는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고점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24)가 작성한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78.50점), 프리스케이팅(150.06점), 종합 점수(228.56점)만이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불멸의 기록’으로 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완벽한 기술을 구사하는 김연아에게 채점 경향이 후해지는 것은 변별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 달갑지 않다. 하지만 4년 전 밴쿠버에서도, 심판들은 보기 드물게 후한 판정을 내려 선수들에게 줄줄이 개인 최고점 기록을 선사했다. 당시에도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난 것은 김연아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