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특기인 아웃코스 전력질주로 단숨에 역전에 성공해 금메달을 안긴 심석희는 역시 ‘에이스’였다. 심석희는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2관왕 전이경(당시 18세)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고기현(당시 16세),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 진선유(당시 18세)로 이어진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괴물 여고생’ 계보를 잇는 ‘차세대 여왕’이다.
심석희는 2012~2013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6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시니어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올 시즌에도 1차부터 4차 월드컵까지 모두 금메달을 거머쥐며 10개 대회 연속 금빛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1차 대회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3차 대회에서는 3관왕에 오르며 소치에서의 금빛 질주를 예고했다.
계주 첫 스타트를 끊은 박승희는 지난 밴쿠버올림픽 1000m·1500m 동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 500m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든든한 간판선수다. 그는 특히 밴쿠버올림픽 3000m 계주에서 석연찮은 실격 처리로 분루를 삼켰으나 무릎 부상을 딛고 4년 전 빼앗긴 금메달을 되찾아왔다. 특히 500m 결승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면서 동메달에 머문 뒤 펑펑 울었던 그는 아쉬움도 털어냈다. 게다가 넘어지면서 다친 무릎이 퉁퉁 부어있는데도 이를 악물고 금빛 레이스를 펼쳤다. 실력과 정신력을 겸비한 박승희는 팀의 중심을 잡는 역할에도 충실했다.
‘맏언니’ 조해리는 오랫동안 국내 정상권 실력을 유지하며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기둥 역할을 해 왔다. 조해리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없이 귀국하는 등 여자 쇼트트랙의 부진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번 대회도 당초 계주 멤버로만 참여했다. 하지만 1500m 준결승에서 김아랑을 철저히 도운 레이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후배들이 믿고 따르는 든든한 언니이자 선배다.
2012년부터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김아랑은 올 시즌 월드컵에서 일취월장한 실력을 과시하며 떠오른 신예다. 네 번의 월드컵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심석희의 뒤를 받치는 ‘2번 에이스’로 성장했다. 대표팀 최광복 코치는 “김아랑이 성장하면서 심석희가 자극받고, 다시 이에 김아랑이 반응하는 식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교 3세’인 공상정은 한국 선수들이 취약한 단거리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대주다. 스타트가 좋고 순간 가속도를 붙이는 능력이 빼어나 앞으로 500m에서 중국과 견줄만한 에이스로 성장할 것이 기대된다. 올 시즌에는 계주 멤버로만 선발돼 역량을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이번 3000m 계주 준결승에서 제 몫을 다하며 묵묵히 팀에 공헌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