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은 “계주에서 금메달을 놓치면 끝”이라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그 어느때 보다 부담감이 컸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의 부활로 쇼트트랙계 파벌 다툼이 새삼 불거지면서 선수들은 응원 대신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다. 금메달을 하나도 못 따는 등 선수들의 부진이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계주 전에 한국이 쇼트트랙에서 획득한 메달은 여자 500m 동메달·1500m 은메달이 전부였다.
한국은 과거 계주 종목에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해왔다. 1994년 릴레함메르부터 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까지 올림픽 4연패를 달성했다. 2010년 밴쿠버 때도 1위로 들어왔지만 진로방해라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실격당해 금메달을 중국에 내줬다.
소치에서는 우울한 소식만 날아들었다. 박승희는 500m에서 선두로 질주하다 뒤에 따라오던 선수에 걸려 넘어지면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막내 심석희는 1500m에서 선두를 지키다 한 바퀴를 남겨놓고 베테랑 저우양(23·중국)에게 추월을 허용해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대표팀 맏언니로 든든한 버팀목인 조해리는 지긋지긋한 올림픽 징크스에 시달려왔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때는 만 15세 나이 제한규정에 걸려 출전하지 못했고, 2006년 토리노 때는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너무 많은 악재가 한꺼번에 쏟아져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중압감을 이겨내고 첫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리스트 이상화는 경기장 응원석에서 ‘금메달이 아니어도 괜찮아. 너희들은 이미 쵝오(최고)!’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번 금메달로 빙상계는 ‘파벌 다툼의 온상’이라는 비난에서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게 됐다. 하지만 논란을 잠재울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빙상계 관계자는 “금메달은 금메달대로 축하할 일이고 쇼트트랙계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이번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4년 뒤 평창에서도 또 같은 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