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멈추고픈 푸틴의 속내=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러시아는 새로운 냉전을 치를 상황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러시아가 서방을 도발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했다. 먼저 주식 시장에 미칠 영향을 들었다. 구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던 1968년엔 주식 시장이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러시아 증시는 11.8%나 폭락했다.
러시아에서 열릴 예정인 각종 국제행사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미 독일과 캐나다 등은 소치장애인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7개국(G7)은 오는 6월 소치에서 열릴 예정인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준비모임을 전면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이런 실리를 포기하고 계속 도발을 시도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러시아 흑해함대 대변인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군에 최후통첩을 했다는 보도에 대해 “완전한 헛소리”라며 강력 부인했다. 또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해 군사개입 반발을 사왔던 군 병력에 대해서도 4일 복귀 명령을 내렸다. FT는 “러시아가 스스로 국제적 고립 상태를 자초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러시아가 크림반도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도발을 강력히 비판하면서도 사실상 푸틴 대통령이 제시했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쪽으로 방침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날 열린 유럽연합(EU) 외무장관 회의에서 마련된 성명 초안에는 국제기구가 크림반도 상황을 감시하고 중재하도록 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FT는 이 방안이 푸틴 대통령이 내세웠던 ‘러시아 주민보호’ 명분을 충족시켜주는 ‘출구’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날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의에서도 군사계획이나 병력 배치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말 뿐인 오바마, 대체 왜?=러시아가 전쟁을 원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크림반도에서의 주도권은 여전히 러시아가 쥐고 있다. 미국이 “군사 개입에 대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경고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시리아 사태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선(Red Line)을 넘는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실제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뒤에도 군사 개입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시퀘스터(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로 인해 국방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도 러시아에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 이후 거세진 반전 여론도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막는 요인이다.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만간 러시아와 물 밑에서 만나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