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하리코프에서 친러 성향 주민 4000명 정도가 연방제 채택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오는 4월 27일에 연방제 채택에 대한 주민 찬반투표를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하리코프와 인접한 도네츠크에서도 주민 2000여 명이 모여 우크라이나에서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시의회 인근에 있던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고 대신 러시아 국기를 게양했다. 또 다른 동부도시 루간스크에서도 수천 명이 모여 러시아 합병을 주장했고, 남부도시 오데사에서도 같은 이유로 시위가 열렸다.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러시아인이 중앙정부에 맞서 싸우고, 러시아군을 환영하자”며 분리 독립 움직임을 부추겼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지난 주말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인근에 8500명 정도의 대규모 병력을 결집시켜 훈련을 실시하는 등 압박 공세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가 침공을 결정할 경우 빠르게 진격할 수 있도록 고속도로 인근에 결집했다. 러시아 측은 “침공은 없을 것”이라며 도발 가능성에 대해 선을 긋고 있지만 서방 측은 러시아가 추가적인 군사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토니 블링큰 미 백악관 국가안보 담당 부보좌관은 “러시아가 침략하지 않도록 마음을 돌리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교장관은 “러시아가 냉전 종식 25년 만에 불법으로 국경선을 바꾸려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와 접경지역인 몰도바도 ‘제2의 크림’ 사태가 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 몰도바에서 독립을 원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푸틴 대통령의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필립 브리드러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령관은 “러시아군은 결정만 내리면 언제든지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진격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푸틴이 다음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이미 몰도바 정부의 통제를 벗어섰다”고 지적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2006년 주민투표에서 97.2%의 지지율로 러시아 귀속을 결정한 바 있으나 당시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18일 미하일 부를라 트란스니스트리아 의회 의장이 러시아 하원에 러시아 합병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몰도바 주변국들은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러시아에 귀속돼 군사기지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라이안 바세스쿠 루마니아 대통령은 “푸틴이 구소련의 국경을 복원하려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러시아의 크림공화국 합병에 속수무책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3일 유럽 순방에 나서면서 러시아 견제에 나섰다. 그는 그동안 이 사태에 대해 말을 아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유럽에서 만나 의견을 주고받을 예정이다. 또 러시아를 경제·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등 압박을 가하기 위해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을 차례로 방문해 정상회담을 할 계획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