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시 장관은 26일(현지시간) TV로 중계된 성명에서 “국방장관과 군사령관으로서의 임무를 끝내기로 결정하면서 오늘 군복을 입고 마지막으로 여러분 앞에 섰다”며 “겸허한 마음으로 대선 후보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집트 선거법은 대선에 출마할 경우 공직에서 먼저 물러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선은 오는 6월 이전에 치러진다.
엘시시의 출마는 오래전 예고된 것이었다. 그는 지난해 7월 무르시가 퇴진한 직후부터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돼왔다. 정부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에 반발해 수개월간 시위를 벌인 시민들에게 엘시시는 무르시 축출의 일등공신이었다.
현지 여론조사 기관 ‘바시라’가 최근 전국 18세 이상 성인 2062명에게 내일 투표한다면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겠느냐고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의 51%가 엘시시를 선택했다. 지지 후보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자가 45%였던 점을 고려하면 거의 몰표를 얻은 것이다.
이밖에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반정부 투쟁에 앞장섰던 구국전선 대표 함딘 사바히(60), 아랍의료연맹 사무총장 아불 포투(63), 아랍연맹 사무총장과 이집트 외무장관을 지낸 이집트 개헌위원회 위원장 아므르 무사(78) 정도다.
여론조사에서 이들 3명의 지지도는 다 합쳐 2%가 안 됐다. 그나마 1%의 지지를 받은 사바히는 지난해 쿠데타 이후 엘시시를 ‘구국의 영웅’으로 치켜세웠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2월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했지만 정말 대권을 노린다기보다 엘시시의 들러리를 선 다음 새 정권에서 총리직 정도를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012년 대선에 출마한 전력이 있는 무사 역시 엘시시의 측근이다. 지난 2월 언론 인터뷰 형식으로 “엘시시 원수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며 엘시시의 대선 출마 의지를 전했던 게 그였다.
포투는 온건 이슬람주의자라는 점 때문에 세속주의 진영과 이슬람 진영 어느 쪽으로부터도 전폭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강경 이슬람주의자인 무르시에게 ‘이슬람 표’의 상당 부분 빼앗겼다. 더욱이 지금은 다수가 이슬람주의와 거리를 둔 세속주의 정부를 원한다.
엘시시가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은 그가 이런 바람을 실현하면서 무슬림형제단 등 강경 이슬람주의자들을 제압해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엘시시는 이번 출마 선언에서 “이집트에서 테러를 없애기 위해 모든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과도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상태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면서 무르시 지지자들을 제압한 사례는 무단통치의 소지를 보여준다. 쿠데타 세력의 집권이 대개 그랬듯 장기 독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집트 시민들로서는 호스니 무바라크 시절부터 계속된 대결에 지쳐 어떻게든 혼란을 수습하고 싶은 피로감이 강한 것이다.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이브라힘 무니르는 AFP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엘시시의 그늘 아래서 이집트의 안정과 안보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