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증거 능력 스스로 부인=지난해 10월 2일 시작된 유씨의 항소심은 6차례 공판 내내 유씨 출·입경 기록의 진위를 둘러싼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계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11월 2차 공판 때 유씨가 2006년 5월 23일~6월 10일 중국과 북한을 두 차례 오갔다는 기록(출-입-출-입)을 새로운 증거로 냈다. 1심 때의 공소 사실인 ‘유씨가 2006년 5월 두만강을 도강해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보위부에 포섭됐다’는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싼허변방검사참을 통해 정식 입북했다는 내용으로 변경하려 한 것이다. 변호인 측은 3차 공판 때 이와 정반대되는 내용의 문서(출-입-입-입)를 제출하며 검찰의 증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양측간 다툼은 주한 중국대사관이 ‘검찰 측 증거 3건은 모두 위조’라고 밝히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공소유지 담당 검사들은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위조 정황이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증거 고수 입장을 밝혔지만,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씨에 이어 대공수사국 김모(52) 과장마저 구속되자 결국 ‘백기’를 들 수 밖에 없게 됐다. 검찰로서는 5개월간의 항소심 재판에서 헛심만 쓴 셈이다. 검찰이 재판 막바지에 증거들을 대거 자진 철회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재판부에 제출한 문서의 증거 능력을 스스로 부인함에 따라 검찰과 국정원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더군다나 증거 위조에 개입한 국정원 직원뿐 아니라 공소유지를 담당한 검사들도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상태다.
◇기존 증거들에 희망을 걸겠다지만…=검찰이 새로 제출한 증거를 모두 철회하면서 재판 상황은 무죄가 선고된 1심 때로 돌아갔다. 검찰은 그러나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공소 유지 자체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씨가 간첩이라는 의심은 거둘 수 없다는 뜻이다. 출·입경 기록 관련 증거들이 없어진 만큼 1심 때처럼 ‘유씨가 도강해 밀입북했다’는 공소 사실도 그대로 유지된다.
검찰은 28일 공판에서 유씨 여동생인 유가려씨 진술의 신빙성을 집중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유가려씨의 증거보전 녹취파일, 검찰 조사 영상녹화 CD 등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유가려씨는 수사 과정에서 “오빠는 간첩”이라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는 이를 완전히 번복했다. 결국 재판부는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윤 차장은 “유가려씨 진술을 1심 법원이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보고 CD 등을 통해 다시 판단해 달라는 주장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자료는 이미 1심에서 서면으로 제출된 바 있어 1심의 결론을 뒤집는 결정적 근거가 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