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림책 작가 최숙희 "그림책은 엄마와의 스킨십… 너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야""

"[인터뷰] 그림책 작가 최숙희 "그림책은 엄마와의 스킨십… 너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야""

기사승인 2014-03-28 16:19:00

[쿠키 문화] 그림책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 최숙희(50)씨가 지난 24일 서울 인사동 웅진주니어 북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대표작 ‘괜찮아’에서 누구보다 활짝 웃을 수 있다며 화사하게 웃던 주인공 여자 아이의 모습이 바로 떠올랐다. “왠지 닮은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옆에 있던 책 편집자가 “그림책 작가들 중에는 작품 속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분이 많더라”며 맞장구를 쳤다.

최 작가는 작업할 때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어떻게 웃을까” 직접 해보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말 주인공과 닮은 듯했다. 그는 요새 그 여자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줘야 할지 내내 고민 중이다. 이 작품이 최근 3D 캐릭터 아동극으로 제작 결정이 됐기 때문이다. 2005년 내놓은 ‘괜찮아’는 50만부 이상 나갔고,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그가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서 ‘완소 작가’로 불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엔 ‘행복한 ㄱㄴㄷ’이란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주인공 남자 아이가 ‘ㄱ’부터 ‘ㅎ’까지 한글 자음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같은 자음으로 시작하는 동물들과 나누는 모습을 담았다. 가령 ‘ㅍ’의 경우, ‘팬더’ 품에 안긴 남자아이 옆에 ‘폭신폭신’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식. 평소 ‘너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야’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왔던 작가의 그림책답게, 역시 따뜻하다.

그는 “동물도감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며 “각각의 동물에 어울리는 동작을 찾고 적당한 말을 고르다보니 기획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를 전혀 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컴퓨터랑은 안 친해지니,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 세대인가보다”고 했다. 이번에도 한지에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일일이 바탕색까지 손수 채색했다.

요즘 아이들은 책 보다 스마트폰을, 손글씨보다 인터넷 자판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그림책보다 유아용 애플리케이션에 더 관심을 보이는 세대라고나 할까. 최 작가는 “스마트폰이나 전자책도 편리한 기기이긴 하지만, 그림책은 편리하게 읽고 덮으면 끝나는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엄마와의 스킨십”이라고 말했다. 그는 “엄마 무릎에 앉든, 품에 안기든 엄마의 말소리와 박동소리를 함께 느끼며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라며 “단순히 책을 읽는 것뿐 아니라 책에 대한 느낌을 엄마와 나누면서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훨씬 더 크다”고 했다.

가령 이번 책 의 경우 ‘나눠 먹자’, ‘도와 줄게’처럼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관계어’가 많다. 최 작가는 “책을 다 읽는 뒤 ‘너한테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니?’ 또는 ‘이럴 때 우리 아기는 어떻게 말하고 싶었니’ 등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잠자기 전에 그림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아이에게 엄마와의 유대를 확인시켜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역시 엄마다. 책을 읽어주며 아들을 키웠다. 최근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던 방식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아들이 늦게 나가면 내 작업도 늦게 시작하고, 늦게 들어오면 그때까지 밤 작업을 하게 되더라”며 “결국 엄마의 시간은 아이의 시간에 맞춰서 생기는 것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며 웃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그이기에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아니었을까. 그는 “좋은 엄마라기보다, 부실한 엄마였다”며 쑥스럽게 웃더니 “그래도 밝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했다. 최 작가는 “엄마 나이는 아이의 나이와 함께 가는 것 같다”며 “아이가 한 살일 때 나도 정말 정신없이 헤매며 키웠는데 아이가 스무 살이 되니 조금 여유로워지고 자유의 시간이 왔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그림책 분야의 맏언니로 불리는 그는 2005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는 등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혹시 눈 여겨 보는 후배 작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누구랄 것도 없이 한국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 수준은 매우 훌륭하다”고 답했다.

그는 작가들의 수준에 비해 정부 지원 등 현실적인 지원책이 전무한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현실이다. 그는 “그림책은 평생 세 번 본다고 한다”며 “어렸을 때, 부모가 됐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각 시기마다 다 다른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며 “그림책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지원도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그림책과 관련해서는 국가적인 지원책도 별로 없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만한 대표 단체도 없다. 출판사들의 그림책 출판 관행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최 작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필요한데 그건 결국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때 발휘될 수 있다”며 “그런데 지금처럼 작가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기다보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김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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