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온 유학생 장이우운(24)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류스타거리 소개 책자를 뒤적였다. 자물쇠로 굳게 잠긴 레스토랑 출입문에는 ‘2013년 12월 31일부로 영업이 종료됐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지하철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에서 15분 넘게 언덕길을 올라온 장씨는 허탈해하며 기자에게 물었다. “여기가 한류스타거리 맞나요?”
서울시 강남구는 지난달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부터 큐브엔터테인먼트 건물을 잇는 1.08㎞ 구간을 한류스타거리로 선포했다. 연예인들이 주로 찾는다는 까페와 음식점, 연예기획사 등 48곳을 한류 스타들의 추억과 이야기를 담은 한류 스토리 매장으로 지정해 외국인의 발길을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2일 아이돌그룹 ‘빅뱅’을 좋아한다는 풍후이(24·여)씨 등 중국인 유학생 2명과 함께 한류스타거리를 방문했다. 2시간 넘게 한류스타거리를 돌았지만 ‘한류’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들은 “어렵게 찾아왔는데 볼 게 없다”며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거리는 외국인에게 불친절했다. 스토리 매장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알려주는 이정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스토리 매장 가는 길을 알려주는 새 모양 표식은 횡단보도 바닥과 도로명 주소 표지판 하단에 작게 표시돼 행인의 시선 범위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안내 책자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결국 강남구청에 직접 전화해 매장을 찾았다. 풍씨는 “혼자 왔다면 길만 헤매다 돌아갔을 것 같다”고 푸념했다.
30여분만에 역 4번 출구 근처에서 스토리매장으로 지정된 A까페를 찾았다. 하지만 한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사진이나 물품은 없었다. 비치돼있던 한류거리 안내책자도 이미 동이 난 상태였다. 근처 B동물용품 전문매장도 출입문 하단에 이 곳이 스토리 매장임을 알리는 새 모양의 표식만 있을 뿐 일반 동물매장과 차이가 없었다. 스토리 매장 48곳 중 14곳을 둘러본 장씨는 “내가 다니고 있는 건국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매장들이었다”며 “스토리의 ‘스’자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매장 관계자 대부분은 선정 기준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A까페 관계자는 “배우 김희선 씨가 구청 측에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B 동물병원 관계자는 “근처에 사는 연예인들이 애완견을 자주 맡기기 때문에 선정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고 D떡집 관계자는 “한달 전쯤 구청 직원이 갑자기 찾아와 사진을 찍어가겠다고 해 그러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임대료가 비싼 강남에 위치한 탓에 상품 가격만 비쌌다. 오후 3시30분쯤 지친 이들이 카페에서 시킨 커피 3잔과 아이스크림 가격은 총 4만원. ‘바닐라라떼’ 한잔에 1만1000원이나 받았다. 한 음식점에서는 탕수육을 2만5000원, 치킨 한 마리를 2만4000원을 받았다.
가격표를 보고 놀란 풍씨는 “학교 주변에서 파는 음식과 맛은 비슷한데 값은 2~3배 더 비싼 것 같다”며 “한류거리가 아니라 상술거리”라 불평했다. 장씨는 “힘들게 찾아왔는데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의 이야기는 전혀 없고 값만 비싸다”며 “다시는 찾아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스토리 매장 선정은 민간 콘텐츠 기업에 위탁했기 때문에 기준은 정확히 모르겠다”며 “올해 안으로 4억원을 더 들여 빈약한 스토리를 확충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