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지역의 주요 관공서를 장악한 친러 무장 세력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최후통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4일(현지시간) 점거 건물을 늘려가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이들은 이미 도네츠크주의 관청 10여 곳을 점거했고, 슬라뱐스크에선 경찰청에 이어 비행장도 장악했다. 시위에 힘을 싣기 위해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동부 러시아 접경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의 수호이(SU-24) 전투기 두 대가 지난 12일 흑해에 배치된 미 구축함 도널드쿡 주변을 고속으로 저공비행했다고 밝혔다. 공대지 폭격 능력을 갖고 있는 수호이 전투기 두 대 가운데 한 대는 구축함에 1㎞ 이내까지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투기는 도널드쿡의 경고에 어떤 응답도 하지 않은 채 90여분 동안 12차례 정도 구축함 주변을 근접 비행했다. 스티브 워런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런 도발적 행위는 국제 조약 및 양국 군사 협약에 위반된다”며 “러시아는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 사태의 긴장 완화에 도움을 주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흐름은 크림자치공화국이 러시아에 편입될 때의 상황과 거의 같다. 최근 10여 일간 친러 세력은 총기와 군복을 착용한 채 비슷한 수법으로 건물을 장악한 뒤 우크라이나 국기 대신 러시아 국기를 올렸다. 그러면 현지 주민들은 이들을 지지했고, 시위대는 주민의 뜻이라며 분리 독립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한다. 그러는 동안 러시아는 접경 지역에 병력을 배치해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며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사태에 개입했다. 서방은 러시아가 이런 식으로 뒤에서 시위를 부추긴다고 확신하고 있다. AP통신도 “우크라이나라는 기름에 러시아가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있다”고 비유했다.
서방도 러시아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유럽연합(EU)은 룩셈부르크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자산 동결과 여행 비자 발급 중단 대상자를 늘린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일각에선 러시아 추가 제재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장 아셀보른 룩셈부르크 외무장관은 “러시아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오는 17일 열리는 4자회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사태 해결을 위해 전화 통화를 가졌지만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다 끝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동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시위에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정보를 토대로 하고 있다”며 “시위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이익을 인정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분노를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