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리는 지난달 24일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어머니 휴대전화의 요금제를 변경하려고 KT에 전화했다가 해당 번호가 한 달 전인 3월 25일부터 이용정지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전화번호가 불법대부광고 전단지에 찍혀 있어 금융감독원의 신속이용정지제도에 따라 취해진 조치였다. 한씨는 회선 1개만 추가했을뿐 이 전화를 꺼놓고 사용하지 않았다.
한씨는 금감원 민원상담전화를 통해 “본인은 대부업자도 아니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라며 “해당 번호도 SKT에서 지정했을 뿐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업으로 우려되는 통화기록이나 문제되는 이체기록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금감원 입장은 단호했다. 우선 전단지 전화번호가 또렷이 나온 만큼 이용정지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어머니 명의의 전화번호를 본인이 관리·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니냐고 지적했다.
개인정보유출사태 이후 불법대출광고 등에 이용된 전화번호를 즉각 중지시키는 ‘신속이용정지제도’는 지난 2월 6일 시행된 이래 두 달 만에 2000여건의 전화번호가 차단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제도로 대부광고나 스팸문자가 크게 줄어들었다”며 “사소한 소명을 들어주면 소비자 보호 차원의 제도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신사 등에서는 금감원의 조치가 현실 여건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본인 이외 명의의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것은 현재 통신사들이 할인판촉 측면에서 적극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신용도에 따라 KT는 한 사람이 3~5개 회선, SKT는 5개 회선까지 개통해주고 있다. 또 불법 대부업체들이 전화번호를 수시로 바꾸면서 일반인들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통신사 측은 “제도를 집행할 때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당국의 섬세한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