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이슈추적] 한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K-이슈추적] 한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기사승인 2014-05-28 10:58:01

[편집자주] 국민일보 쿠키뉴스는 국민 건강증진과 올바른 건강생활 정보 제공을 위해 ‘K이슈추적’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쿠키뉴스(K) 기자들이 생생한 보건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담는 ‘K이슈추적’은 보건의료 정책 평가와 대안 마련, 쉽고 재미있는 건강 정보 제공, 먹거리 안전 모색, 보건의료 산업 발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 연재가 불합리한 보건의료 분야의 관행을 개선하고, 올바른 정책 방향 제시와 국민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제보 부탁드립니다.

[K-이슈추적] ‘한국의 경직된 약가제도 문제점’ 기사 연재 순서

① 한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② 제약산업 옥죄는 약가정책은?

③ 한국제약협회 이경호 회장 (인터뷰)

④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김성호 전무 (인터뷰)

⑤ [현장에서/장윤형 기자]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려면

[쿠키 건강] #1. 보령제약은 지난 2000년부터 약 500억 원의 연구개발비(R&D)에 투자해 국산 고혈압 신약인 ‘카나브’를 출시했다. 카나브는 지난해 3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멕시코 등 중남미 13개국, 브라질, 러시아 수출에 이어 이어 중국 진출까지 확정지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 2011년 터키로 수출하기 위해 현지 제약사와 협상하던 중 가격조율을 하지 못해 수출이 결렬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지 제약사가 한국의 약가를 기준으로 의약품을 유통할 경우 이윤을 남기기 어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의약품의 팽창을 막기 위해 도입한 ‘사용량 약가 연동제(시장에서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약가가 깎이는 제도)’로 인해 국내 제약사는 역풍을 맞았다.

#2. 다국적제약사인 얀센의 당뇨병 신약 ‘인보카나’는 최근 국내 시장 발매를 포기했다고 한다. 현실에 맞지 않은 약가 등의 이유 때문이다. 이 회사는 수천원대의 약가를 예정했으나 900원대에 등재될 가능성이 커지자 국내 급여신청을 포기했다.

정부의 ‘경직된 약가제도’로 말미암아 국산 ‘신약’ 개발 및 해외진출에 제동이 걸렸다. 신약 개발을 해도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다. 보령제약의 카나브는 경직된 약가구조로 인해 국산신약 수출에 제동이 걸린 대표적 사례다. 이는 국내 제약사 뿐 아니라 신약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인색한 신약 가치 평가로 인해 신약 발매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사의 오리지널 의약품의 팽창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의 불똥이 결국 국산 신약에도 튀었다. 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도 피해를 준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 이후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분야가 바로 ‘제약산업’이다.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1000조원에 달한다. 이는 자동차산업이 600조, 반도체산업이 400조원대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큰 규모다. 정부는 제약산업을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지정하고 2020년까지 세계 7대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제약산업이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신약’에 대한 가치 평가 문제다.

한국 제약산업은 1890년대 최초의 제약기업인 동화약방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12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1등 신약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역추적해 분석해보기로 했다.

◇말 뿐인 ‘세계화’, 팔면 팔수록 깎이는 ‘국산 신약’= 세계적인 신약개발을 위한 선결조건은 무엇일까. 이경호 제약협회장은 “제약사가 벌어들인 수익을 R&D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기업을 옥죄는 약가제도 정책을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의 과도한 ‘약가 규제’와도 맞물려 있다. 신약 가치 평가에 인색한 정부 약가정책 탓에 제약사들 임원들은 모두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최근 기자가 만난 제약사의 한 임원은 “수백억 원을 들여 신약 개발에 투자했지만 약가 인하로 인해 투자한 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혁신적인 신약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1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과 최소 10∼15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막대한 투자비용과 시간을 감수하고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에 뛰어든다. 하지만 정부의 약가 후려치기 등으로 인해 개발의지가 꺾인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 일괄인하로 인해 국내 제약사의 신약개발 의지를 꺾이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날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용량-약가 연동제’다. 정부는 2020년까지 글로벌판매 국산신약을 10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사용량 연동 약가인하제도를 통해 약이 많이 팔릴수록 약가를 인하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보령제약의 카나브도 이러한 대표적 사례로, 이 약은 발매 3년만에 약가가 인하됐다. 이는 국산 신약인 2011년 대원제약 펠루비정, 2012년 일양약품 놀텍정에 이어 3번째다.

이를 두고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시장형실거래가제도와 사용량약가연동제도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문정림 의원은 사용량약가연동제도가 제약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김성주 의원은 시장형실거래가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약제비 절감보다 병원들 배를 불려 건강보험재정에 손해를 끼쳤다고 지적했다.

2009년 도입 사용량-약가연동제는 ▲유형1(협상을 거쳐 등재된 의약품이 예상 사용량보다 30% 이상 사용될 경우) ▲유형2(사용범위가 확대된 의약품의 사용량이 6개월 후 30% 증가한 경우) ▲유형3(유형1, 2로 협상을 거친 의약품의 사용량이 전년대비 60% 이상 증가한 경우; 유형1을 거치지 않는다면 유형3의 조건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제외) ▲유형4(협상을 거치지 않고 등재된 의약품의 사용량이 등재 4차년도에서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한 경우) 등 4가지의 유형이 있다.

그러나 이 기준들은 전년대비 사용량 증가율을 기준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증가율 변화가 적은 대형품목보다 사용량의 변동 폭이 큰 소형 제품의 위주로 협상이 진행돼 정부의 재정절감 효과는 물론 제약업계의 불만이 가중됐다.


카나브는 국내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최초 약가협상 당시 합의한 예상사용량보다 사용량이 30% 이상 증가해 약가인하 대상이 됐다. 현재 이 약의 성장 추이를 매년 10% 이상 증가 시 지속적으로 약가 인하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산 신약의 약가가 낮아지면 해외 진출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제약업계의 입장이다. 최태홍 보령제약 사장은 “현재 한국은 보험 재정절감에 기초해 약가 정책을 펼쳐 선진국에 비교할 때 약값이 약 40% 수준”이라며 “이러한 정책에 의해 국내 신약도 해외 수출시 역차별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정부에서 정해준 약가가 중국, 터키 등 해외 시장에서 약을 수출할 시에 참조가격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약을 저가에 팔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정책이 정부의 보험재정 절감과 글로벌제약사들이 개발한 대형신약의 가격억제라는 측면도 있지만 국산신약을 육성하는데 많은 걸림돌이 된다. 이는 곧 ‘국산신약 역차별’ 논란과도 직결된다.


그 이유는 같은 신약임에도 불구하고 국산신약은 애초에 해외 개발신약 대비 가격이 낮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국내 약가는 평균적으로 OECD 국가 대비 약 40%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의경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2013년 11월 ‘우리나라와 OECD국가의 약가비교 연구’ 발표를 통해 한국의 등재된 신약 가격이 OECD 평균의 42% 수준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세계 8번째로 개발된 고혈압 치료제 신약인 카나브의 경우에도 발매 당시 다국적사의 7개 신약 대비 약 80% 수준에서 책정됐고 사용량-약가 연동제에 의해 약가가 또다시 인하되면서 이중고를 겪었다.

정부에서 추진해 온 제약산업 약가정책으로는 사용량 연동 약가인하제(2009년 1월) 외에도 저가구매인센티브제(시장형실거래가, 2010년 10월부터 16개월),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에 따른 약가인하(2011년 1월~2014년 1월), 일괄 약가인하(2012년 4월) 등이 있다. 더불어 리베이트쌍벌제가 도입되면서 제약산업은 더욱 큰 위기를 맞았다. 이들 연쇄적인 약가인하 조치로 인해 제약업계는 긴축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단, 시장형실거래가제도의 경우는 대형병원의 약값 후려치기 논란을 빚으며 폐지 수순을 밟았다.

국내 제약업계는 정부의 연쇄적인 약가인하 조치로 약품비 청구실적이 두자리수까지 감소했다. 한국제약협회가 18일 발표한 '약가인하 이후 제약산업의 변화'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68개 상장 제약기업들의 2012년 약품비 청구액이 5조2914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6.8% 감소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 다짐과는 달리 이중 삼중의 약가인하 정책을 지속해 신약개발과 해외진출을 위한 제약업계의 투자 의지가 꺾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 제약산업에서 리베이트로 인한 약가거품은 큰 문제였다. 이러한 거품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약가인하는 단행됐다”며 “정부가 약가 인하 정책을 실시한 이래로 약가가 바로잡혔다. 이제 정부도 제약사들이 R&D 투자해 성장전략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들, 한국 신약 진입 힘들다” 토로= 다국적제약사가 개발한 글로벌신약의 경우도 국내 진입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혁신 신약을 국내에 공급하고자 공단과 약가협상을 진행해왔다던 글로벌 제약사의 임원들은 한마디로 “한국정부와 협상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4대 중증질환을 내걸면서 ‘희귀질환 치료제’를 허가하기 위한 ‘위험분담제’가 시행되면서 그나마 몇 개의 신약은 보험급여가 됐다. 그만큼 국내 약가 협상이 까다롭다는 얘기를 반증한다. 국내 출시 10년 만에 보험급여 승인을 받은 한국머크의 대장암치료제 ‘얼비툭스’는 이러한 대표적 사례다.

미하엘 그룬트 한국머크 대표는 최근 한국정부와의 급여 협상에 대해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글로벌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시장에만 맞춰 가격을 조정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희귀난치질환으로 알려진 발작야간혈색뇨증
치료약인 ‘솔리리스’의 보험적용 과정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환자들과 의료진들의 줄기찬 요구로 보험 급여가 되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렸다.

한국얀센은 당뇨병치료제의 국내 시판을 포기했다. 현실에 맞지 않은 약가를 이유로 시판을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경직된 약가제도를 보여준 것이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신약은 기존에 나와 있는 약물에 비해 가격이 높으나, 오히려 새로 등재된 약의 약가가 저렴해 다수의 제약사들은 한국에서 신제품을 내놓기가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정부의 경직된 약가구조 탓에 좋은 약이 있어도 국내에 시판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김성호 다국적산업협회(KRPIA) 전무는 “보험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신약에 대한 가치를 낮게 평가하다보니 최근 우리나라의 신약 도입시기가 무척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동이나 중국에도 밀리고 있다”며 “신약의 도입이 늦어지는 것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환자”라고 말했다.

◇국산 신약 20개, ‘블록버스터 신약’ 탄생하려면= 한국 제약산업은 선진국 수준의 생산 인프라 구축과 R&D 역량 확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는 세계 10번째 신약개발국으로 해마다 평균 2~3개의 신약을 개발하는 등 연구개발 경쟁력도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1000조원에 달한다. 이중 스위스의 노바티스 제약사와 미국의 화이자 제약사 등 세계 20대 제약사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세계 시장의 60%를 차지한다. 반면 제약시장은 19조원 규모로 세계 시장의 1.9%를 차지하고 있으나, 정부의 약가규제가 강화된 2010년 이후 외형적으로는 사실상 정체수준이다.

수출은 2012년 2조원을 돌파해 증가세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다국적 제약사의 한국 내 생산 공장 철수와 수입약품 증가 등으로 3조원대의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 약가규제가 강화된 2010년 이후 사실상 국내 제약산업이 정체돼 있다. 매출을 기준으로 할 때 1조원이 넘는 제약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국내 신약 성과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국내 신약 1호인 1999년 SK제약의 선플루자를 시작으로, 대웅제약 이지에프, 동아ST 자이데나, 일양약품 슈펙트와 놀텍, 보령제약 카나브, 2013년 종근당의 듀비에까정까지 지금까지 총 20품목의 국내개발신약이 출시돼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시험 프로젝트 수도 2009년 198건에서 지난해 2010년 229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국내개발신약의 판매 실적을 보면 대체적으로 저조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1000억원을 넘은 대형품목은 2개의 품목뿐이다.

정부에서도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3년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 5개년 계획’을 보면 R&D 지원에 민관합동으로 총 1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서 콜럼버스프로젝트, 혁신형제약기업 선정도 이러한 정책지원의 일환이다.


하지만 제약기업들은 보다 현실을 파악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제약계 한 임원은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들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대체약제로 인해 53.55%의 약가 인하, 개발원가 반영, 해외수출 신약에 대한 우대 반영 문제 등이 있다.

이상은 한국제약협회 공정약가정책팀 선임연구원은 “국내개발신약이 R&D 투자비와 개발원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보험 등재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가격에 혁신가치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국내기업들이 신약에 대한 R&D 투자를 계속해야 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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