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이슈추적] KRPIA 김성호 전무 “로드맵 없는 약가정책 개선 시급”

[K-이슈추적] KRPIA 김성호 전무 “로드맵 없는 약가정책 개선 시급”

기사승인 2014-05-28 11:23:03

[K-이슈추적] ‘한국의 경직된 약가제도 문제점’ 기사 연재 순서

① 한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② 제약산업 옥죄는 약가정책은?

③ [인터뷰] 한국제약협회 이경호 회장

④ [인터뷰]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김성호 전무

⑤ [현장에서/장윤형 기자]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려면

[쿠키 건강] “정부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계획된 ‘로드맵’이 없는 주먹구구식의 행정이라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임기응변’에 의존하죠. 정부가 약가정책을 시행할 때 이와 관련된 연관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분석해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기업은 정부 규제에 맞춰 투자계획을 준비하는데, 불확실성에 근거해 투자할 수는 없잖아요.”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김성호(사진) 전무는 지난 23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협회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와 같이 밝혔다.

김 전무를 만나 국내 약가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정책에 있어 명확한 로드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규제환경의 불확실성이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하기를 꺼려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한국에 대한 관심도나 투자매력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는 “한쪽에서는 제약산업 발전 5개년 계획을 외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약가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이 점에서 현 정부가 친(親)제약 정부인지, 반(反)제약 정부인지조차 혼란스럽다”며 “규제가 일관성 있게 운영되고 신약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춘다면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투자에 적극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약가제도는 건강보험재정 확보를 위한 규제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정부는 지속적인 제약산업 규제로 보험재정을 줄여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선별등재, 2009년 기등재 목록 재정비, 2012년 동일성분 동일가제도, 2012년 약가 일괄인하에 이어 최근 폐지된 시장형실거래가까지 포함해 정부는 지속적인 약가절감 정책을 펼쳐왔다. 약가 일괄인하에 따라 모든 품목은 약가가 평균 14%가 떨어졌다.

그동안 다국적제약사들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연구인력 채용에 따른 일자리 창출, 임상시험 지원 등으로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 기여해왔다. 이들 다국적제약사의 국내 진출은 선진국의 우수한 의약품 생산기술과 마케팅 전략 등을 국내에 전수했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재정 절감에 맞춰 시행한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인해 국내제약사는 물론, 다국적 제약사들의 투자마저 위축됐다.

우려는 현실화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외국계 제약사들은 국내 투자를 줄이는 것은 물론 생산기지를 중국, 동남아 등으로 이동시켰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제약사 중 국내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곳은 한국얀센, 한국오츠카, 바이엘코리아 등 3곳 뿐이다. 지난 2002년에는 한국노바티스가, 2005년에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한국릴리, 2006년 한국화이자, 2007년 한국로슈, 2008년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등이 순차적으로 국내에 있는 의약품 생산 공장을 철수시켰다. 아울러 신약개발 협력과 임상연구 등을 위한 연구소 유치도 물 건너가고 있다.

정부의 ‘경직된 약가제도’는 혁신신약의 국내도입 시기도 늦추고 있다. 김 전무는 “신약의 도입시기가 무척 지연되면서 중동이나 중국에도 밀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예전에는 보험급여는 차치하고라도 신약허가가 용이했으나, 지금은 아예 우리나라가 우선순위에서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가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위험분담제도’를 통해 일부 희귀질환치료제가 보험급여가 되고 있지만 품목수는 극히 적다. 희귀암이나 희귀난치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빠른 신약 도입은 ‘생명줄’과도 같다. 김 전무는 “4대 중증질환만 보장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다른 질환으로도 확대해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약의 도입 지연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김 전무는 “만약 한 환자가 자기에게 꼭 필요한 약이 현재 임상시험 중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신약 임상에 참여해 일찍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국내에 신약 도입이 늦어질수록 피해를 입는 것은 환자”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아시아인에 특화된 암치료제가 현재 글로벌로 임상시험 중인 경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신약 도입이 늦어지면 환자가 임상 3상에도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신약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는 국내 제약산업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선별등재 제도 이후 급여 등재된 한국의 신약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국가 평균 가격의 42% 수준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또 신약의 74%가 OECD 국가 중 가격이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김 전무는 “우리나라는 신약가격이 OECD 최저 수준인데다 그 후에도 사용량 약가 연동제 등을 비롯한 각종 규제 정책으로 약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신약 값어치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깎고 보는 식의 약가 정책은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약 가치 평가를 위해 정부는 지난 2007년 의료기술평가(HTA)를 도입했다. HTA는 의료기술이 안전하고 효과적인지를 평가하는 제도다. 하지만 협회는 HTA가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무는 “신약의 가치를 평가할 때 경제적인 면만을 고려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해 유연하게 운용하고 있다. 이미 영국,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가격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HTA 외에도 질환의 중증도, 사회적 요구, 삶의 질 등 다중평가를 통해 신약 값어치를 측정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HTA에서는 신약을 평가할 때 비교약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저평가된 기존 약들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아무리 좋은 신약이 국내에 들어와도 기존 약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무조건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서 신약가치를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가규제가 심할수록 신약개발 프로젝트의 가치가 떨어져 R&D 투자는 감소한다. 그는 “한국에서 1조 기업과 글로벌 의약품을 만들려면 약가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며 “제약사의 수익성이 올라가고 이러한 수익성을 기반으로 제약사는 신약개발을 위한 R&D에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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