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장윤형 기자]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려면

[현장에서/장윤형 기자]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려면

기사승인 2014-05-29 17:00:01

아직 갈 길이 먼 ‘제약강국’

세계적인 글로벌 제약회사 중에는 스위스의 ‘로슈’가 있다. 로슈그룹은 전 세계 1위의 항암제 분야의 선도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로슈는 우리나라 국민들도 다 알만한 항암제들을 개발한 제약회사다. 대표적인 치료제로는 항암 치료의 역사를 바꾼 표적항암제인 ‘허셉틴’, ‘아바스틴’ 등이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보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스위스라는 국가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제약사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기자가 만난 로슈의 한 임원은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을 통한 지속적인 혁신이 세계적 신약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위스 정부는 로슈와 같은 혁신적 기업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제도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이번에 ‘K-이슈추적: 한국에서 세계적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5월 28일자 본지 기사 참조)’을 주제로 기획취재를 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12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놀라울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는 것이 첫 번째요, 그럼에도 여전히 제약강국으로 발돋음하기 위한 길은 ‘멀고도 멀다’는 것이 두 번째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신약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약업계에서 오래 일하신 임원분들에게 물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부의 경직된 약가제도’가 신약개발 의지를 꺾는다고 입을 모은다.

신약개발을 위해서는 R&D에 적극 투자를 해야 한다. 혁신적인 신약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1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과 최소 10∼15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연구 개발, 그리고 투자가 뒷받침돼야 세계적인 신약이 탄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비용을 어디서 조달하느냐에 있다. 신약개발을 위한 투자는 제약사의 수익성 개선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신약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약가정책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약사들은 허리띠를 졸라멜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물론 정부도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복지부가 시행하고 있는 혁신형제약기업 선정, 콜롬버스프로젝트 통해 제약산업 육성책을 마련했다. 미래부도 국내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R&D 지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미래부와 복지부 등 정부 R&D 지원체계가 하나로 통합돼지 못한 것은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약가정책도 제약사 발목을 잡는 정책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건보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추진해온 ‘사용량 약가 연동제’, ‘시장형실거래가제’, ‘일괄 약가인하’ 등의 일련의 약가정책은 제약사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보험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추진한 이러한 제도들은 제약사들이 개발한 ‘신약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무기로 쓰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의 역설’이라고 볼 수 있다.

제약사들은 경직된 약가제도로 인해 수익이 저하돼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비조차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을 한다. 현재 건강보험의 약가는 제약기업이 피부로 느낄 수
수 있는 실질적 R&D 투자 부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호 회장은 “약가제도를 개선해 제약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면 이를 통해 신약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 이것이 자국의 의약 주권을 확립하는 길”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왜’ 국민에게 이로운지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약 사용이 의료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한 연구의 내용은 흥미롭다. 이 연구에 따르면 신약은 약제비 지출의 증가를 상쇄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른 의료비의 지출을 7.2배나 감소시켜 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연구에서는 오래된 약을 사용하는 대신 이보다 상대적으로 효과가 좋은 신약을 사용하게 되면 환자가 약제비를 절감할 수 있고, 입원, 잦은 병원방문 등의 각종 의료비용 지출이 궁극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혁신적인 신약은 건강보험재정 절감에 보탬이 될 수 있다. 혁신적인 신약이 개발되면 약을 개발한 제약사만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복용하는 환자, 그리고 건강보험재정을 관리하는 정부에게도 모두 도움을 준기 때문이다. 정부가 약가절감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신약을 활용해 총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인류는 의료기술의 발달과 혁신적인 신약개발을 통해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신약은 인간의 삶의 질을 연장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업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신약에 대한 가치 평가가 경제적인 수치로만 매길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약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곧 그 나라가 얼마나 선진국 대열에 올라와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제약강국의 길, 언제쯤 올까.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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