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한도전'의 위기관리법…위기관리 시스템 붕괴된 우리사회 풍자

[칼럼]'무한도전'의 위기관리법…위기관리 시스템 붕괴된 우리사회 풍자

기사승인 2014-06-06 16:07:55

6·4지방선거에 앞서 지난달 치러진 MBC ‘무한도전 선택 2014’는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됐다.

2005년 4월 첫 방송 후 올해로 10년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 ‘토요예능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지켜오다가 최근 위기론이 나오자 이를 당당히 인정한 것이다.


마침 세월호 침몰을 비롯한 각종 참사가 잇달아 터지면서 우리사회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던 때였다.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팽배하던 상황이기도 했다.

개그맨 유재석이라는 탁월한 리더가 있는 무한도전은 위기론을 받아들이며,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를 뽑겠다고 했다. 처음엔 결과가 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노홍철이 치고 나왔다. ‘시청자가 부모’라는 공약을 내세운 그는 사전 여론조사 결과 유재석을 누르고 1위에 오르면서 막판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개표방송도 흥미진진했다. 개그맨 선거, 그것도 특정 프로그램 출연자의 인기투표 성격이었건만 꽤 긴장이 감돌았다. 대선후보 TV 토론을 맡았던 시사평론가 정관용씨가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무한도전 후보자 토론을 진행한 것은 큰 웃음을 주었다.


선거전에는 우리 정치·사회에 대한 패러디가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컨트럴 타워’가 없다는 비난에 빗대 개그맨들은 ‘웃음 컨트럴 타워’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형돈은 속옷차림으로 나와 “딴 주머니를 차지 않는 후보”를 자처했고, 박명수는 “나는 안돼도 상대후보를 떨어뜨리러 나왔다”고 말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한자리수 지지율을 얻은 군소 후보 4명은 이합집산 끝에 단일화를 이뤘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 서로를 헐뜯는 인신공격, 적도 동지도 없는 철새 정치, 투표당일 불법 선거운동 등 그동안 선거에 이뤄졌던 온갖 작태가 그대로 쏟아졌다.


“이 사회 절대다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아닌 절대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란다”는 정형돈의 마지막 연설은 감동을 선사했다.


무한도전은 서울 두 곳에 투표소를 설치고 온라인 투표도 병행했다. 이틀 동안 전국적인 사전투표도 실시했다. 출구조사도 진행해 실제 선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까지 했다.

이 선거에 무려 45만8398명이 참여했다. 무한도전 선거가 실제와 달랐던 점은 거기엔 웃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새벽부터 와서 몰려와 투표소에 긴 줄을 서고, 투표를 하러 온 후보자를 환호하면서 선거가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실제 선거는 즐겁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조용하게 시작된 선거전은 뒤로 갈수록 공약이나 인물보다는 비방전으로 흘렀다. 가족간의 아픈 상처가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제 치열한 선거전이 막을 내렸다. 국민들이 던진 소중한 한 표의 결과도 나왔다. 압도적인 승자는 없었다. 국민들은 여야 모두에 냉엄한 민심의 회초리를 들이댔다.


‘박근혜 구하기’를 내세운 새누리당에도, ‘세월호 심판론’을 기치로 내건 새정치민주연합에도 국민들은 절대적인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여야의 분석은 다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무한도전은 자신의 경쟁력 하락을 깨끗이 인정하고 시청자와 머리를 맞대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했다.

우리 정치에도 어느 때보다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민심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봐야한다. ‘위기가 위기인지 알지 못하는 게 진짜 위기’라는 무한도전의 메시지를 새겨볼 때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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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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