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으로 불리던 김흥수 화백이 9일 새벽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1919년 11월 17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1944년 일본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작가로 활동했다. 1950년대 프랑스 파리 살롱 도톤 회원으로 지낸 그는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담는 ‘하모니즘’을 창시했다.
귀국 후 1965~1969년 성신여대 교수로 1969~1980년 미국 펜실바니아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한 고인은 덕성여대에 몸담고 있던 1992년 43세 연하인 제자 장수현씨를 만나 결혼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김 화백이 노환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할 때 부인이 항상 보필하면서 잉꼬부부로 유명했다. 그러나 장씨가 2012년 난소암으로 갑자기 숨지면서 김 화백은 기력을 잃고 시름시름 앓았다.
이후 김 화백은 지난 3월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박수근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찾아 건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연희동 CSP111갤러리에서 열린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장수현·김흥수 전’에 참가해 부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가끔씩 소품을 제작하는 정도이지만 건강이 회복되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청력이 많이 떨어지고 관절에도 문제가 있어 제대로 작업하기는 어려웠다.
“굴복하지 않고 재기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할 겁니다. 영원한 현역으로 이젤 앞에서 생을 마칠 생각입니다.” 한때 ‘80 청년’으로 불릴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던 김 화백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인 곁으로 영원히 떠났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