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스크린에 한국 누아르 상업영화 세 편이 나란히 걸렸다.
장동건 주연의 ‘우는 남자’, 차승원을 내세운 ‘하이힐’, 이민기 박성웅 주연의 ‘황제를 위하여’가 그것. 잘생긴 남자 주인공과 강렬한 액션을 앞세운 누아르 영화가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나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닮은 듯 다른 영화 세 편을 비교해본다.
◇3인 3색 누아르=‘우는 남자’는 한국 액션영화의 새 지평을 연 ‘아저씨’(2010)를 만든 이정범 감독의 신작이다. 표적을 제거하던 중 실수로 아이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킬러 곤(장동건). 그에게 그 아이의 엄마 모경(김민희)을 암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곤의 갈등은 깊어간다. 어린시절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곤의 내면 연기 비중이 높다. 김민희의 물오른 연기력도 인상적이다.
‘아저씨’에서 손과 발을 이용한 ‘스타카토’식 빠른 액션을 선보였던 이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대규모 총알이 투입된 총격장면을 앞세웠다. 킬러 곤과 암살조직에서 온 삼인방이 펼치는 총격 액션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수백 발의 총성과 여의도 금융회사 안에서 빚어진 마지막 액션 장면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장진 감독의 ‘하이힐’은 세상의 편견에 부딪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한 남자가 겪는 슬픔을 풀어낸 감성 누아르. 겉으로는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자기 안에 욕망을 숨긴 형사 지욱(차승원)의 운명을 그렸다. 차승원은 강한 남성미가 느껴지는 액션부터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섬세함까지 다양한 매력을 선보인다.
이 영화의 백미는 폭우 속 우산 액션장면. 긴 팔과 다리로 단호하면서도 절도 있는 액션을 펼치는 차승원의 모습은 춤을 추는 듯 유려하고 기품이 넘친다.
11일 밤 개봉하는 박상준 감독의 ‘황제를 위하여’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승부조작에 연루돼 한 순간 모든 것을 잃은 야구선수 이환(이민기)이 최대 조직 황제 캐피털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누아르 공식에 충실한 작품이다.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남자 주인공이 있고, 그를 이용하려는 여자가 있으며 주인공의 앞길을 막거나 뚫어주는 암흑가 보스들이 등장한다. 홍보사는 이 영화가 “수컷들의 리얼한 욕망을 드러낸 성인을 위한 느와르”라고 전했다. 세 편 모두 청소년관람불가다.
◇장르는 대세…흥행은 글쎄=‘아저씨’(2010) ‘범죄와의 전쟁’(2011) ‘신세계’(2013)의 성공 이후 누아르가 안정적인 투자처로 자리 잡으면서 이 장르가 대세로 떠올랐다. 시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 4일 개봉한 ‘우는 남자’와 ‘하이힐’은 주말 박스오피스 각각 5위와 6위(영화진흥위원회집계)에 머물며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장동건 차승원이라는 핫한 배우, 대세 장르. 그런데 왜 흥행은 예상보다 못할까.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우는 남자’와 ‘하이힐’은 대중성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작가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며 “최근 1000만 관객을 넘은 작품들은 대중성과 상업성을 강조한 영화다. 감독의 작가성이 되레 흥행에는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고 분석했다. 장르의 특성상 비극적인 결말이 주를 이루고, 잔혹한 장면이 많아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도 많다.
한 홍보사 직원은 “작년 재작년 한국영화가 잘된 것은 다양한 영화가 나왔기 때문인데 최근 비슷해 보이는 누아르가 동시에 나오면서 식상함을 줬다”며 “여기에 개봉 중인 할리우드 영화의 선전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