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24일 오전 10시 정부 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직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문 후보자는 가족과 언론, 신앙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이 시점에서는 사퇴가 박근혜 대통령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질문을 받지 않고 브리핑룸에서 떠났다.
◇이하 기자회견 전문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에게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준 점에 대해 많은 감사를 느낀다.
어려운 상황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도운 총리실 동료 여러분,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고 지도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밤을 새우며 취재한 기자들, 내 젊은 시절을 다시 한 번 더듬어본 기회를 갖게 됐다. 내 40년 언론생활에서 본의가 아니게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적이 없었는가 하고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몇 말씀드리고자 한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의 근본을 개혁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겠다는 말에 조그만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총리 후보로 지명을 받은 뒤 이 나라는 더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런 상황을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운영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는 내 뜻도 무의미하게 됐다.
나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인권의 권리다.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는 원칙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하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와 법치로 지탱되는 것이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는 정치가들과 여론은 변화되고 편견에 의해 지배받기 쉽다.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은 국회다.
이번 내 일만 해도 대통령이 총리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원, 일부 여당의원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나에게 사퇴하라고 말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다. 다른 것을 따내서 그걸 보도하면 그건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의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니다.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에는 희망이 없다.
신앙 문제에 대해 말하겠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갖는다. 그건 소중한 권리다. 평범한 개인의 시절에 말한 게 무슨 잘못인가. 내가 존경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이라는 책에서 신앙을 고백하며 고난의 의미를 밝혔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젊은 시절에 감명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신앙고백을 하면 안 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괜찮은 건가.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내가 총리 지명을 받은 뒤 벌어진 사태로 인해 내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벌을 받게 됐다. 나에게 친일·반민족이라고 한 것에 대해 나와 가족은 상처를 입었다.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만세를 부르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아버지 문기석으로부터 듣고 자랐다. 당시 우리 민족 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만세를 부르다 돌아가셨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아, 검증 과정에서 가족 이야기를 한 것이다. 검증단이 내 자료를 갖고 보훈처에 알아봤다. 뜻밖에 할아버지가 항일투쟁 중에 순국하신 게 밝혀져 2010년 애국장이 수서된 것을 알게 됐다. 자녀들도 검색해봤다. 여러분도 (인터넷)검색창에 문남규라고 쳐봐라. 이 사실이 있는 1921년 상해 임시정부에 있는 독립신문에서 찾아봐라. 언론재단에 있다. 우리 가족은 이를 밖으로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절차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정치싸움 때문에 나라에 목숨을 바친 할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독립유공자 자손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나는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의 손자로서 법절차에 따라 다른 경우와 똑같이 처리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나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분이고, 나를 거둘 수 있는 분도 그분이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내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거라고 판단했다. 나는 오늘 총리 후보를 자진 사퇴한다. 감사하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