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플라워 신비' 쥴리아나갤러리서 한눈에 감상

앤디 워홀 '플라워 신비' 쥴리아나갤러리서 한눈에 감상

기사승인 2014-07-11 20:56:55




서울 강남구 청담동 쥴리아나 갤러리에서 2004년 최초로 앤디워홀 뉴욕재단의 협찬으로 워홀전시를 기획, 선보였다. 두 번째 전시로 ‘플라워의 신비’를 7월 20일까지 연다. 1970년 10점의 포트폴리오와 1983년 3점의 포트폴리오로서 ‘플라워’ 중에 가장 대표적이며 그의 작업의 원천인 신비하고 환상적인 황홀함과 뷰티를 잘 나타내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를 팝 예술가로 더욱 승화시킨 1970년 마릴린 먼로, 마오, 플라워의 포트폴리오 작품들은 각각의 색채에 의해 변화되는 신비를 종이위에 캠퍼스위에 예술로 승화시켰다. 20세기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앤디 워홀은 현재에도 세계 명성 있는 유수의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끊임없이 전시되고 있으며 광고, 디자인 등 우리가 접하는 일상 속에서 살아있는 그는 팝 자체이며 신화를 창조해낸 비범한 예술가이다.

앤디 워홀은 1928년 미국에서 태어나 카네기 인스티튜트에서 회화와 디자인을 전공했다. 1950년 그는 뉴욕에서 상업 예술가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56~57년 작가로서 가장 명예로운 아트디렉터 크럽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1960년 초 순수예술가로 전환한 워홀은 시각예술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대중문화를 끌어들여 현대적인 삶과 밀접한 대중 이미지를 소재로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종이와 캔버스에 옮겼다.

특히 1970년대 마릴린 먼로, 플라워 시리즈, 마오, 여왕 시리즈, 조셉 보이스 등 미디어가 조명하는 그 시대의 거의 모든 할리우드 스타들과 유명 인사들의 초상을 폴라로이드 사진과 함께 페인팅과 종이위에 에디션 기법으로 작업했다. 전통적인 추상미술의 회화를 구분하는 경계를 혼란스럽게 하였고 고상한 순수미술의 영역에 소비문화의 이미지를 도입했다.

실크스크린 과정에서 경제적인 것과 회화의 우월성을 깨달아 모든 것을 이루어낸 미학이었다. 그 당시 수많은 전시를 통하여 그는 대중을 사로잡으며 팝아트보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삶과 신비를 쫓고 있었던 워홀은 대중 앞에 신화적인 인물로 비유되었으며 스타로서 필수적인 요소인 신비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그 예로 1965년 필라델피아 대학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수많은 인파로 열광적인 전시회가 되었다. 많은 군중들로 그의 작품은 치워야만 했고 그것은 워홀신화의 단편을 보여준 것이다.

미디어가 지배하는 20세기 후반에 워홀의 팝 아트는 그 자신이 예술작품이 됨으로써 이 시대 문화를 자신의 삶으로 대변하고자 했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그의 일생에서 그가 가장 흥미로워했던 것은 미디어 스타의 광적인 숭배자였다. 스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그의 인생이었고 워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욕구는 스타처럼 되는 것이라 했다. 비범한 생명력으로 신비로웠던 워홀은 팝아트의 신화를 일으켜 인간의 삶과, 그리고 대중예술이 합쳐지기를 원했던 팝의 정신과 함께 그는 영원한 신비의 존재이자 영원한 스타로 남아있다(02-514-4266).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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