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 개막...박 대통령 풍자한 홍성담 걸개그림 논란 작품 설치 유보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 개막...박 대통령 풍자한 홍성담 걸개그림 논란 작품 설치 유보

기사승인 2014-08-08 20:41:55
홍성담 작가의 박근혜 대통령 닭그림

홍성담 작가의 박근혜 대통령 패러디 그림

8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 ‘달콤한 이슬-1980 그 후’ 전시가 개막됐다. 20세기 민중 미술을 한 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에는 14개국 4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은 독일의 대표적인 여류 화가 케테 콜비츠의 판화 작품 ‘어머니들’ 등 49점이 소개됐다. 작가는 단순하면서도 간명한 필치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을 담아내며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해왔다.

케테 콜비츠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항일 목판화 운동을 벌인 중국의 문학가 겸 사상사 루쉰의 목판화 작품 58점도 선보였다. 실직 노동자 등 당시 시대상을 투박하면서도 세밀하게 담아낸 작품들이다.

전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비롯해 국가 폭력 등에 희생당한 세계사의 아픔을 공유하고 이를 미술로 재조명해 치유를 시도한다. 전시장 입구에는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감로도(甘露圖)’를 걸었다. 감로도는 조선시대 후기 사찰에서 유행했던 독특한 회화 양식으로, 망자나 고통 받는 자를 위로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모습 등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 직접 표현한 작품 17점도 원화로 소개된다. 일본의 침략 만행을 고발해 온 일본 작가 도미야마 다에코는 5월 광주의 모습을 담은 ‘광주의 피에타’·‘자유광주’·‘시민의 힘’ 등 작품을, 전정호는 계엄군의 학살을 단순하지만 긴장감 넘치는 선으로 표현한 판화 연작 ‘학살’을 선보인다.

제주 출신 작가로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인 강요배는 제주 4·3 사건의 아픈 역사를 힘겹게 드러내고, 임흥순은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을 내놨다. 일본 오키나와(제2차 세계대전), 대만(2·28 사태) 등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역사의 아픔을 미술로 승화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9월 5일∼11월 9일)에 앞서 개막한 이번 프로젝트는 전시 외에도 강연,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이날 개막에 앞서 광주비엔날레 감독을 지낸 오쿠이 엔위저 2015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 등의 발제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특별 프로젝트의 대표작인 걸개그림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광주 정신’을 바탕으로 치유를 시도한다는 당초 취지는 빛이 바래게 됐다. 일종의 이동식 벽화인 걸개그림은 집회 때 대형 건물 외벽 등에 걸리던 민중미술운동의 상징으로 1980년대 광주에서 시작됐다.

걸개그림을 맡은 민중화가 홍성담은 5·18 당시 시민군과 주먹밥을 나눠주던 오월 어머니가 세월호를 들어 올려 아이들이 전원 구조되는 장면을 묘사한 가로 10.5m, 세로 2.5m 크기의 작품 ‘세월오월’을 내놨다.

이 그림 일부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허수아비로 묘사하면서 광주시가 작품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작가는 결국 개막 당일 박 대통령의 모습을 ‘억압받는 민중’을 상징하는 닭으로 바꾸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계급장을 가린 수정본을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광주비엔날레 측은 장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작품 설치를 유보하기로 했다. 덩달아 이날 오후 7시 열릴 예정이었던 개막식도 지연되면서 행사에 차질이 빚어졌다.

작품 설치가 유보되자 걸개그림 제작에 참여한 지역 작가들과 시민 50여명은 개막식이 열릴 광주시립미술관 앞에서 가로 30m, 세로 10m 크기의 대형 프린트 작품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항의했다.

책임 큐레이터인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광주정신을 승화해 미래 지향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수학공식처럼 직설적인 것보다 예술적으로 표현해달라고 작가에게 주문했는데 주제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이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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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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