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가 뉴스에 나온다면 어떤 사진이 사용될까요?
언론사가 특정인물의 사진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은 SNS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SNS 계정을 갖고 있고, 자신의 얼굴이 나온 사진 한 장 정도는 올려놨을 테니까요. 사진이 여러 장인 경우도 많겠죠. 이럴 땐 언론사가 사진을 택합니다. 물론 법적인 문제를 검토한 다음 이야기죠.
그런데 학사모를 쓰고 환하게 웃는 모습 대신 인상을 쓰며 문신을 자랑하는 사진을 썼다면 어떨까요. 멀끔하게 정장을 입은 사진 대신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을 택했다면요? 오로지 한 장의 사진이 나를 대표하는 상황에서 어쩐지 억울하지 않을까요?
18세 흑인 청소년 마이클 브라운군이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과 함께 SNS에서 벌어진 ‘내가 총에 맞아 죽는다면(IfTheyGunnedMeDown)’ 운동도 이런 공감대에서 출발했습니다.
지난 9일 미국 NBC뉴스가 사건을 보도하면서 어딘가 반항적이고 삐딱해 보이는 브라운군의 사진을 사용했거든요. 물론 여기에는 개인에 대한 오해가 아니라 인종차별이라는 오랜 갈등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브라운군은 무표정하게 오른손의 세 손가락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손 모양은 평화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일부에선 조직폭력배의 사인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사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언론이 브라운군의 페이스북에 있는 사진 중 하필이면 그 사진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흑인 청소년은 불량하다는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다면서요. NBC뉴스는 곧 사진을 변경했습니다. 브라운군은 평범하고 유순한 청소년으로 바뀌었죠.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미 새로운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어딘지 불량해 보이는 자신과 평범한 자신을 나란히 SNS에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 ‘IfTheyGunnedMeDown’ 태그가 사용된 건 지난 10일이었습니다. 한 흑인 트위터리안이 학사모를 쓴 사진과 술병을 들고 춤추고 있는 사진을 함께 게시했죠. 그리고 ‘내가 총에 맞아 죽는다면 언론은 어떤 사진을 사용할까?’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후 ‘IfTheyGunnedMeDown’ 태그는 25일 기준 24만회 이상 인용됐습니다.
한 흑인 여성은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모습과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또 다른 흑인 남성은 전화기를 들고 험상궂은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턱시도를 빼어 입은 사진을 덧붙였습니다. 위협하듯 총을 겨누고 있던 흑인 남성이 갓난아기 옆에서 아빠미소를 짓는 사진도 있습니다.
브라운군의 장례식이 열리는 25일을 앞두고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조금씩 진정되는 모습입니다. 지난 2주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IfTheyGunnedMeDown’ 관련 게시물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죠. 흑인차별, 인종차별이라는 주제가 크게 와 닿지 않다보니 SNS에서 ‘IfTheyGunnedMeDown’이라는 태그를 접한 한국 네티즌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언론의 시각이 대중의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에 가려진 이 작은 움직임을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