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이겨야 너와 싸우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요.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는 성립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오직 하나 뿐인 금메달을 놓고 대결한 상대가 북한이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지난 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정규시간 90분과 연장전 30분을 더한 120분의 혈투 끝에 북한을 1대 0으로 제압했습니다. 전광판의 시계가 멈춘 후반 15분 수비수 임창우(대전)의 결승골로 승부를 갈랐습니다. 정말 짜릿한 승리였죠. 23세 이하 선수 17명과 연령 제한이 없이 합류한 ‘와일드카드’ 선수 3명은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으로부터 2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았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는 병역의 의무에서 특별한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육군을 기준으로 1년9개월의 군 복무를 하지 않고 예술·체육요원으로 대체 복무가 가능합니다. 프로나 아마추어로 갓 입문해 전성기를 시작한 20대 남자 선수에게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혜택일 겁니다. 선수에 따라서는 시상대 최상단의 영광과 포상금 120만원, 연금점수 10점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광종 감독이 20명의 선수들을 모두 ‘미필자’로 구성한 이유도 어쩌면 그래서일 겁니다.
그라운드에서 이기면 전장에서 적으로 만나지 않을 수 있는 모순이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성립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적’ 북한을 상대로 병역면제권이 걸린 금메달을 쟁취해야 하는 상황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만 보여줄 수 있는 모순이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 인터넷에서는 경기를 앞두고 “군대스리가와 티키탄광의 대결”이라는 말이 쏟아졌습니다. ‘군대스리가’는 군대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를 혼합한 우리 네티즌의 신조어입니다. 군대에서 하는 축구란 의미죠. ‘티키탄광’은 스페인의 짧은 패스플레이를 의미하는 ‘티키타카’와 북한의 노동교화형을 상징하는 아오지탄광을 혼합한 신조어입니다. 노동교화형을 받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축구란 의미입니다. 물론 북한에서 지도자나 선수가 국제대회의 졸전으로 노동교화형을 받는다는 소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3일 인터넷에는 환호보다 조소가 많습니다. “북한 선수들은 우는 척을 하지만 남한에서 군인을 스무 명 줄이기 위해 일부러 지라는 지령을 받은 것일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조만간 ‘남조선 괴뢰군 20명을 줄이고 돌아온 전사들’이라는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뽑을 것” “결과적으로 아오지탄광보다 논산훈련소가 더 무섭다는 게 증명됐다”는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이기고도 고개를 갸웃하고 만든 북한과의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을 역사는 어떻게 다시 쓸까요.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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