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고 참을성 없는 일부 기획자를 겨냥한 그림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판기에 “‘바로 나오지?’라니… 저는 자판기가 아닙니다만”, 마술사 모자에 “‘심플하지만 화려하게’라니… 그건 마법입니다만” 등의 문구를 넣어 디자이너들의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그림들이죠.
네티즌들은 “클레식하면서 모던한 느낌 찾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주세요” 등의 댓글을 달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심플하지만 화려하게’란 표현은 “충분히 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설전이 붙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을 소개한 쿠키뉴스 3일 보도에서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입장 차이가 커 앙숙 관계일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엔지니어까지 합세해 티격태격할 때가 많다고 했죠. 디자이너가 기획자를 ‘혹’하게 하려고 실현 불가능한 그림을 그려서 엔지니어에게 던져준다고요.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스캔 펜’입니다. 디자이너가 사과에 펜을 갖다 대면 빨간색이 나오고, 풀잎에 갖다 대면 초록색이 나오는 펜을 구상했다는 겁니다. 이를 본 엔지니어가 “와우, 아이디어 좋은데. 어떤 원리지?”라고 물으니 디자이너가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라고 받아칩니다. 엔지니어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겠네요. 결국 이 아이디어는 사용자가 색을 선택할 수 있는 펜으로 실현됐습니다.
이 사례는 앞서 소개한 그림보다 더 많은 패러디와 논란을 불렀습니다. 두 직업 모두 을의 입장일 때가 많아서 그럴까요. 엔지니어가 디자인을 할 줄 알고 디자이너가 과학적 원리를 알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엔지니어가 느끼는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동영상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목은 ‘The Expert’(전문가)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사가 회의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기획자는 “회사 발전을 위해 초록색 잉크와 투명잉크를 사용해 선들이 모두 직교하는 빨강선 7개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선언한 후 엔지니어에게 “그렇게 해 줄 수 있죠?”라고 묻습니다.
당황한 엔지니어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프로젝트 매니저는 “일은 주어졌고 해내야 하는 것이네”라고 말합니다. 디자이너는 한 술 더 뜹니다. 선을 작고 귀여운 고양이 모양으로 그려달라고 한 것이죠. 마지막엔 고양이 모양 풍선도 추가해달라고 하네요. 이다지도 생산적인 회의는 7분30초 동안 이어집니다.
네티즌들의 첫마디는 “암 걸릴 것 같다”입니다. 뒤를 이어 “현실적이어서 웃기지 않다” “오늘 나 저런 회의하고 왔다” “한국에서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등의 댓글이 달렸네요.
세 직업군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타낸 그림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기획자는 디자이너를 뭣도 모르는 아기, 디자이너는 엔지니어를 컴퓨터밖에 모르는 오타쿠, 엔지니어는 기획자를 놀고먹는 한량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멋지게 상대방은 엉망진창으로 표현했네요. 의미심장한 패러디 사진에 네티즌들은 “적절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번에도 아쉽지만 교과서적인 말로 끝을 맺으려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면 좀 더 생산적인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