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잠들면 안돼요. 눈을 뜨면 사라지죠.’
서태지(본명 정현철·42)가 만들고 아이유(본명 이지은·21)가 부른 ‘소격동’ 가사 중 일부분입니다. 소격동은 서태지 9집 정규앨범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의 선 공개곡입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 같죠? 6일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는데 해석이 분분합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을 소재로 했기 때문입니다.
소격동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있던 곳입니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이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해 정신교육을 시켰던 ‘녹화사업’을 주도했던 기관이죠. 이 과정에서 6명이 숨졌습니다. 네티즌들은 노래에 담긴 사회적 의미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는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는 소녀가 달려가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라디오에서는 지하철 2~3호선 공사소식이 나오고요. 바람개비를 손에 든 소녀의 모습에서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합니다. 소년이 뒤를 쫓지만 소녀는 종이학을 남긴 채 사라지고, 하늘에서는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하얀 눈이 내립니다.
두 사람은 계단에 앉아 라디오를 듣습니다. 뉴스 앵커는 ‘녹화사업’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소녀가 건넨 종이학은 야간 등화관제 훈련에 대한 안내장과 연관되죠. 종이에는 ‘불빛이 모두 사라지는 밤에 만나’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야간 등화관제 훈련은 북한의 야간폭격을 가상해 30분간 모든 불빛을 차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세대에게는 생소하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이죠.
서태지컴퍼니는 “소격동은 여자의 입장과 남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1980년대 소격동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테마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넷에는 “녹화사업으로 의문사한 6명의 희생자를 모티브로 그 시절 사랑하던 남녀가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 아닐까?” “뮤비를 보고 노래 배경이 녹화사업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서태지 버전이 나오면 정확히 의미 알 수 잇을 듯?” “소격동 2절 하단부터 1절로 올라가면서 읽어보면 의미가 더 잘 이해됨” 등의 의견이 많습니다.
서태지는 소격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에도 ‘교실 이데아’ ‘시대유감’ 등 자신의 음악에 시대정신을 많이 반영했죠. 그의 음악세계를 보면 알 수 있듯 소격동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노래로나마 역사적 아픔이 조금이나마 치유됐으면 합니다.
최지윤 기자 jyc8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