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나 한 듯 여야 인사들이 12월 31일 극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후보는 이날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을 관람했죠. 표면적인 이유는 세대간의 소통입니다.
문 후보는 지난달 24일 성탄절을 앞두고 부인 김정숙 여사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를 봤습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는 30일 SNS를 통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감독 김성호) 시사회에 다녀온 사실을 알렸고요. 주목할 사실은 세 영화 모두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는 겁니다.
여야 인사들의 행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제시장을 언급한 이후여서 관심을 모읍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핵심국정과제 점검회 모두 발언에서 “최근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며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죠.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영화를 직접 본 것은 아니며 신문에 많이 나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행보가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그러자 문 후보는 30일 트위터에 “영화 관람까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논란되는 현실이 씁쓸합니다”라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봤을 때는 또 다른 논란이 있었죠. 하여튼 신기한 세상입니다”라고 밝혔는데요. 여야 인사들의 관람 이후 영화가 더 많은 주목을 받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국제시장은 흥남철수, 독일 광부 파견, 베트남 전쟁 등이 배경으로 등장해 진보·보수 이념 논쟁이 일고 있지만 개봉 21일 만에 관객 800만을 넘었습니다. ‘님아…’는 어떻고요. ‘워낭소리’(2009)가 기록한 293만 4333명을 5년 만에 깼죠. 500만 돌파를 앞뒀습니다. 또 착한영화 ‘개훔방’은 입소문을 타고 상영관 확대 요청이 쇄도하고 있고요.
영화 흥행 이유가 오로지 정치인들의 관람 덕분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정치인들도 인기 있는 영화 관람을 통해 주목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고요. 재미있는 건 세 영화를 통해 각 의원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는 겁니다. 어쨌든 세 편 다 한국영화니까 기분 좋은 일 아닐까요?
최지윤 기자 jyc8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