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국제시장’ 천만 이면에는…영화계 엄연한 ‘갑질’ 존재

[친절한 쿡기자] ‘국제시장’ 천만 이면에는…영화계 엄연한 ‘갑질’ 존재

기사승인 2015-01-17 19:35:55

"[쿠키뉴스=최지윤 기자] 2015년에도 영화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극장가는 한국·외국영화 막론하고 대규모 영화가 장악했습니다. 상영관을 얼마나 잡느냐에 따라 흥행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이 올해 첫 1000만 영화에 이름을 올렸지만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영화계에도 엄연한 ‘갑질’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국제시장’은 지난해 17일 개봉해 28일 동안 정상을 지켰습니다. 개봉 날부터 1월 13일까지 매일 700~1000여개 극장에서 3~4000회 이상 상영됐죠. 14일부터 상영관이 하루 600여개로 줄어 약 2800회 상영되고 있습니다. 극장에 걸려 있어서 영화를 봤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러브, 로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등은 대체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려면 하루 1~2번 상영하는 시간을 잘 맞춰야 합니다. 먼 길을 찾아가서 봐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고요. 개봉 2주 만에 IPTV 서비스를 시작한 영화도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평가조차 받기 전에 극장에서 내려간 겁니다.

소위 말하는 멀티플렉스시스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죠. 요즘 관객들은 원하는 영화를 선택해서 보고 식사, 쇼핑 등을 한 곳에서 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복합적으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소 규모가 제작·배급한 영화는 주요 극장에서 보기 쉽지 않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 씨네큐브, 상상마당 등에서도 하루 한 두 차례 상영하는 게 다입니다.

‘러브, 로지’(감독 크리스티안 디터)는 2주 만에 IPTV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누적관객 수는 25만9861명에 그쳤고요. 같은 날 개봉한 ‘사랑에 대한 모든 것’(감독 제임스 마쉬)은 일주일간 매일 400여개 극장에서 1400~1600회 정도 상영됐지만 이후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현재 상영하는 곳은 아트하우스 모모 뿐입니다. 총 관객 수는 27만5333명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열린 제7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음악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른 작품입니다. 지난 15일 발표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는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음악상 등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죠.

영화가 작품성 혹은 재미가 없어서 관객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상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분명 많이 본 영화와 좋은 영화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죠.


‘개훔방’ ‘더 테너’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개훔방(감독 김성호)은 입소문을 타면서 배우, 관객 할 것 없이 상영관 확대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는 서명 운동과 함께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대관 릴레이에 동참 중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개봉 직후부터 하루 200개 상영관밖에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20여개 상영관에서 하루 1~2회 상영되고 있는데요. 누적관객 수는 22만 명에 불과합니다.

최근 이 영화 제작·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대표가 사임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엄 대표는 지난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관객 시사회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개봉했지만 치열한 박스 경쟁에서 1/3 정도의 개봉관 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그나마 받은 상영관은 조조와 심야 시간대가 주를 이루는 등 가족영화로서 매우 치명적이고 안타까운 상항에서 개봉했다”며 “지난해 ‘소녀괴담’이 작은 성공을 거뒀지만 ‘카트’에 이어 ‘개훔방’ 흥행 실패는 오로지 제 무능함이었음을 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더 테너’(감독 김상만)는 어떻고요. 상해 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금마장 영화제 등 아시아 3대 영화제에 초청받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국내 성적은 초라합니다. 개봉 열흘 만에 VOD 서비스를 시작했고 누적관객 수는 4만8631명을 기록했습니다.

홍보사 관계자는 “로케이션 촬영 등으로 제작비가 약 100억 원 정도 들었다. 손익분기점을 계산하지도 않았다”며 “적은 상영 회 차에도 영화의 감동을 느낀 관객들이 자신만의 아트워크를 SNS에 올리며 응원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대형 극장을 보유한 CJ와 롯데는 입을 모아서 말합니다. 언론시사회 후 평가에 따라 공정하게 상영관 배분이 이뤄진다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제작·배급한 영화는 극장 전체에 도배돼 있죠.

문화체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뉴 등 4개 주요 배급사가 차지하는 전체 영화 점유율은 78.4%, 한국영화만 놓고 보면 93.6%에 이릅니다. 문체부는 지난달 상영 스크린수와 기간 등 상영정보를 공개해 계열사가 제작하거나 배급한 영화에 더 많은 상영관을 할애하는 행위를 감시하겠다고 했는데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차단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입니다.

국제시장이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라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어떨까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고 해도 볼 수 있는 상영관이 없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입니다. jyc89@kmib.co.kr"
최지윤 기자 기자
jyc89@kmib.co.kr
최지윤 기자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