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최지윤 기자] 공교롭게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감독 김성호) 제작·배급사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전 대표와의 인터뷰 전날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관객 1000만 돌파 기념 미디어데이가 있었다. 환하게 웃는 윤제균 감독과 눈물을 훔치던 엄용훈 전 대표. 두 사람의 모습이 서로 교차되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국제시장은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개훔방은 상영관이 없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재 영화계 현실이 아닐까. 개훔방과 국제시장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을 뿐 아니라 부성애를 강조해 많이 비교되곤 했다. “남의 영화를 평가하기 조심스럽다”는 엄 전 대표. 국제시장, CJ·롯데 등 대기업 스크린 독점, 안철수 의원과 인연 등과 관련된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다.
-국제시장 봤나?
봤죠. 영화쟁이니까.
-‘개훔방’과 국제시장이 많이 비교됐는데?
남의 영화를 까는 것 같은데 제 선택의 방식이라고 하죠. 누군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저는 드러내지 않는 걸 선택해요. ‘‘개훔방’ 주인공이 누구야?’라고 물으면 저는 영화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아빠,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집이라고 해요. 물론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에게 감사하지만요. 개훔방이 결국 아빠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 누군가가 계속 얘기해서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관객들이 진심으로 ‘아빠가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을까’ 느끼게 하고 싶었죠. 그래야 그 대상에 존경심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영화랑 많이 본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이 본 영화 중에 혹시 소장하고 싶은 영화 있나요? 생각해보면 소장하고 싶은 영화는 많이 본 영화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소장하고 싶은 영화가 꼭 흥행하지 않은 영화인 건 아니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이 상당히 왜곡돼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관객의 수요가 공급의 양을 창출해야 되는데 극장이 수직 계열화된 구조 속에서 편애, 소위 말해서 갑질을 하는 거죠. 특수 관계에 있는 영화 공급의 양으로 수요를 끌어들이는 방식이잖아요. 관객 1000만이 넘는다 한들 관객한테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죠.
-김성호 감독이 리트윗한 사진을 보니까 개훔방 상영관은 2개인데 다 매진됐더라. 그런데 국제시장 상영관은 많은데 자리가 많이 비었더라.
그 얘기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런걸 보면서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제가 관객들에게 일일이 머리 숙여서 인사하고 그랬어요. 관객들은 ‘쟤가 왜 나한테 인사할까’ 생각했을 텐데요. 참 눈물 나오려고 하네요.
-대형 배급사들은 시장 논리를 주장하는데?
시장논리에 대해 당당하다면 100분 토론에라도 나오라고 하고 싶어요. 끝장 토론이든 대기업이 꼭 나와서 직접 얘기 해줬으면 좋겠어요.
-흥행에 있어서 배급사, 대기업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나?
그렇죠. 그들의 어떤 이너서클이라고 해야 되나. 대기업 중심의 구조는 그 안에 일반 관객을 체류시킨다. 막대한 자본이 든 마케팅의 힘 아닌가. 그것이 체류돼서 자신의 어떤 판단, 영화에 대한 선택과 향유, 생각의 다양성 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전에 1000만 영화는 꿈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참 쉬워졌어요. 영화에만 공을 들여야 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점점 영화계가 비정하고 매정해지는 느낌이에요.
-언젠간 진심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람들에게 회귀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얼마쯤 걸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돈, 힘으로 해결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인간의 본능이 있는 거다. 무엇으로도 획일화시킬 수 없는 것 말이다. 길고 긴 독재와 가난의 시기를 지나면서 결국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는 본성은 똑같았다. 어느 시점까지는 대기업 구조에 체류돼서 망각의 힘으로 끌려갈 수 있겠지만 ‘정말 아니다’ 싶으면 사람들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상영관 독과점은 매년 반복되는 문제다. 해결방안은 뭐라고 생각하나?
해결방안을 몰라서가 아니에요. 한 트위터리언이 ‘개훔방 이야기가 비단 영화계로 끝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개훔방 관련해서 링크된 기사 출처를 보세요. 모두 마이너한 인터넷언론사입니다. 거대자본은 우리의 눈과 귀를 틀어쥐고 돈 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썼더라고요. 현재 대기업들이 정부나 언론 등을 엄청난 힘으로 장악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정말 메이저라고 하는 신문은 이 문제에 대해 어느 한 곳도 다루고 있지 않아요. 마치 제가 골방에 갇혀 있는 느낌이에요. 외부에 누군가 견고한 방음장치를 해놓은 거죠. 손가락으로 조금씩 구멍을 내서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아요. 사면초가 같다고 할까.
-프라임엔터 본부장 경력이 있더라. CGV랑 연관 있지 않나?
지금 강변 CGV가 우리나라 멀티플렉스 1호점이다. 프라임이 영화 산업을 하면서 신도림에 테크노 CGV 프라임이라는 극장이 생겨났죠. 한번도 갑이었던 적은 없어요. 프라임에 있을 때도 갑은 아니었죠. 내가 이건물의 주인이라고 해도 입점해있는 가게의 주인은 아니잖아요. 건물주라고 해도 가게에 아무 때나 들어가서 돈도 안 내고 (음식을) 먹을 수는 없죠. 그러니까 갑은 아니죠.
-CGV·롯데 등 대형 배급사와 협력할 생각은 없는 건가?
당연히 경우에 따라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특정 대기업이랑 협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게 아니에요. 그 정도 선언할 힘도 없고요. 제 신분 자체도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잖아요. 제작자가 특정 기업에 네거티브를 선언한다면 현명하지 못한 거죠. 잘못된 생각이에요. 지금도 반 CJ, 반 롯데 이런 선언한 게 아니라 이 구조를 바꾸자고 외치고 있는 거예요. 그들이 밉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알려주고 싶은 거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제시장을 봤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국제시장을 봤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먼저 봤고,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개훔방을 봤더라.
보면서 많이 웃었어요. ‘그렇게 됐네’ 생각했죠. 우연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새정치추진위원회 활동 경력이 있던데? 안철수 의원이 SNS에 개훔방 관련 글을 올렸더라. 친분이 있는건가?
아무래도 (있죠).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이랑 합당한 뒤 새정치추진위원회는 없어졌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안 의원과) 같이 했었다. 새정치추진위원회에 들어가기 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그렇진 않았다. 4개월 전부터 최측근이 여러 차례 요청을 해왔다. 내 주제에 그걸 한다는 게 웃겨서 거절하다가 안 의원을 직접 만나본 뒤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게 됐다. 현재는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가끔 추진위원들끼리 식사 하는 정도다. 안 의원하고는 민주당 합당하고 나서 1번 보고 개훔방 때 본 게 2번째다. 영화 보고 문자가 왔더라. 원래 시사회 때 초청 드렸는데 국회 일정 때문에 도저히 시간 낼 수 없어서 못 간다고. 안 의원이 원래 영화를 엄청 좋아한다.
-(인터뷰 중간 안 의원이 국회 대관 릴레이에 동참한다는 전화가 왔다.) 대관 문의가 계속 오는 편인가?
지금 대관 문의가 끊임없이 와요. 방금 안 의원이 국회에서 무료 시사를 하겠다고 하네요. 김병후 정신과 박사, 서울 탑치과 병원장 등이 대관하겠다고 연락 왔어요.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대관 동참) OK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기업체와 개인 관객들 문의도 많죠. 서울우유에서는 아예 전체대관을 하겠다고 하네요. ‘관 한개 대관해봤자 티가 나냐’며 ‘전체대관도 할 수 있냐’고 해요. 사실 저한테는 다 빚이에요. 정말 감사하지만 죄송하죠. ‘저 빚을 언제 다 갚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많이 돼요.
-현재 영화계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공통의 문화가 생기잖아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질서가 생겨요. 질서는 가장 합리적인 룰을 만들죠. 그 중에 가장 약한 사람한테는 이해와 배려를 해줘요. 어린시절 놀때 보면 제일 막내는 깍두기라고 해서 가장 힘센 사람한테 붙여주잖아요. 어른들이 정해준거 아니거든요. 자연스럽게 터득한거지. 문화 속에 질서도 있지만 이해와 배려도 함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의 구조는 질서와 이해, 배려가 없어요. 오직 비정함과 매정함만 있을 뿐이에요. 힘 있는 자들의 이너서클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선배 노릇을 할 수 없고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이 되는 거죠. 거기 누가 선배가 있겠어요? 제가 기억하는 예전 영화계는 누가 영화를 시작해서 회식한다고 하면 서로 축하해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자리가 얼마나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초대받지 않은 남의 집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jyc8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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