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세월호 참사로 본 ‘지성의 전당’의 과거와 현재

[세월호 1주기] 세월호 참사로 본 ‘지성의 전당’의 과거와 현재

기사승인 2015-04-16 10:46:01
국민일보 DB

[쿠키뉴스=이다겸 기자]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일어나 TV를 틀었다가 속보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 구조’라는 문구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와 약속한 장소로 나갔습니다. 휴대전화를 보며 친구를 기다리던 중 전원 구조가 ‘오보’이며 상당수의 탑승자들이 아직도 세월호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친구와 만난 후 첫 마디는 “봤어? 어떡해”였죠.

이 참사로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구조됐고, 304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 중 250명이 사망·실종돼 전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배가 침몰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도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은 선장, 제대로 된 초기대응을 하지 않았던 해경, 정부의 늑장대응 등 위기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졌다는 사실은 다시 말하기 입이 아플 정도입니다.

그 후 1년이 지나 다시 ‘4월 16일’이 됐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분향소를 설치하거나 추모식, 추모 영화를 내놓는 등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진행됐습니다. 대학가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죠.


성균관대와 건국대는 교내에 메모판을 설치해 학생들이 추모글을 남길 수 있도록 했고, 고려대에서는 ‘세월호 참사 300일 사진전’을 진행했습니다. 이화여대는 노란 배 접기 행사와 침묵 행진을 하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추모 집회나 문화제를 추진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자체적으로 추모행사를 기획한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동국대 4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세월호 1주기에 대한 심경을 묻는 질문에 “참사 후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시간이 정말 빠른 것 같다. 실종자분들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추모행사에 참여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는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취업 준비로 바빠 교내 분향소에만 들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성균관대 3학년 B씨는 “SNS에 ‘세월호 잊지 마세요’ 캠페인에서 지목받은 사람이 글을 쓴 것은 여러 번 봤다”면서도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교에서 세월호 1주기가 이슈가 되고 있지는 않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 1주기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가가 너무 조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학생운동이 잦던 70·80년대와 비교해 요즘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선입니다.

이에 대해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이호규 교수는 인터뷰에서 “과거와 사회참여양식이 다를 뿐이지 대학생들의 참여의식이 왜곡돼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70·80년대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데모나 시위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인터넷 사이트나 SNS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사회구조가 완전히 변했기 때문에 70·80년대의 학생운동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독재반대’라는 명확한 명분이 있었다. 사회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아젠다(agenda)가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은 그만큼의 파급력을 갖는 아젠다가 없다. 그럴만한 아젠다가 없다는 것이 학생들이 오프라인에서 많은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도 그렇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희생자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대규모 운동으로 이어질 정도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대리기사 폭행사건’ 등 일부 유족들의 잘못된 행동과 참사 이후 이어진 정치적 갈등으로 피로도가 높아져있다.”

이어 이 교수는 센터(권력층)와 비센터(비권력층) 사이에 서브센터(시민단체 등)가 생긴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70·80년대에는 권력층과 비권력층이 ‘1대1’ 로 대립했었지만 지금은 권력층과 비권력층 사이에 시민단체, 참여연대 등의 집단이 있다. 이것은 과거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을 대신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던 대학생들의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던 시절, 대학생들은 취직준비 대신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는 등 배움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취직을 목적으로 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개인이 할 일도 많고, 비권력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새로운 집단도 만들어진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굳이 나서려고 하겠나.”

하지만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아젠다가 생긴다면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2011년에 반값등록금과 관련해 학생들이 촛불시위를 했다. 옳고 그름을 확실히 판단할 수 있고 공감이 가는 문제에서는 학생들도 직접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대학생이 지식인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해 요즘 대학은 취업을 위한 하나의 과정처럼 여겨집니다. 대학생 수도 너무 많이 늘어나 더 이상 지식인을 대표한다고 하기도 어렵죠.

하지만 대학이 사회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참사에서도 ‘지성의 전당’의 과거와 현재를 엿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 분명한 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그른 것을 꾸짖고 옳은 것을 받아들이는 청년들의 목소리와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plkplk123@kukinews.com
이다겸 기자
plkplk123@kukinews.com
이다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