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차이나타운’ 김혜수 “늘 톱배우? 슬럼프 수시로 있죠”

[쿠키人터뷰] ‘차이나타운’ 김혜수 “늘 톱배우? 슬럼프 수시로 있죠”

기사승인 2015-04-30 18:07:16

[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영화 ‘차이나타운’ 속 김혜수(45)는 카리스마 그 자체다. 대체할만한 다른 여배우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사채와 인신매매로 돈벌이를 하는 거대 불법조직의 보스 역을 맡았다. 그 무게감은 영화를 본 뒤에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 여운을 고스란히 안은 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나긋나긋하게 듣기 좋은 목소리가 먼저 귀에 꽂혔다. 아이라인만 대충 그린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편안한 차림으로 웃으며 얘기하는 그에겐 왠지 여유가 느껴졌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물론 숨길 수 없었다.

여배우? 그냥 ‘배우’

“결정하기 전에는 정서적으로 힘들었어요.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중간에 수정고(초고에서 수정된 시나리오)들을 (저에게) 보냈는데 안 봤어요. 책(대본)을 보고 호감과 매력이 있으면 배우들은 또 막 다가가거든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분명 그런 호감이나 매력이 있었지만 잔상이 너무 힘들었어요. 결과적으론 최종 수정고가 왔고, 그건 또 본거죠(웃음). 그때 아마 제가 하겠다고 그랬나 봐요.”

자리에 앉자마자 김혜수는 ‘차이나타운’ 출연을 결정하기 전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단순히 센 캐릭터라는 이유로 고민한 건 아니었다. 그는 “영화를 본 뒤 깨달은 거지만 연기 이외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세다, 어떻다’는 걸 넘어서 뭔지 모를 큰 부담이 있었어요. 이유는 저도 시사회 때 영화를 보다 (그제야) 알았어요. 엄마(극중 김혜수가 맡은 역할)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조금씩 뭔가를 보여줄 때마다 ‘차이나타운이라는 공간이 이런 거구나’라는 게 느껴져요. ‘이 여자의 움직임에서 드러내는 게 차이나타운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기였구나.’ 그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중심인물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를 그가 잡아야 했다는 것이다. 잔혹하면서도 치열하게 살아온 인물의 삶을 표현하는 게 먼저였다. 외적인 모습부터 신경을 썼다. 보형물을 넣어 무너져 내린 듯한 체형을 만든 것도 그래서였다. 피부와 머릿결은 최대한 거칠게 분장했다. 외양에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던 여자라는 해석에서 나온 설정이었다.

“외적인 형태를 구축하는 것과 내적인 걸 달리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외적인 태도가 어떻게 준비되느냐에 따라 내 마음이 움직인 건 아니었어요. 단지 엄마라면 그 모습이어야 했던 거죠. 내적인 것과 외적인 걸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보통 여배우라면 꺼려졌을 역할이다. “어디 한 구석 아름다움을 찾을 데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혜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망가졌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던데 망가진 게 아니라 엄마 역을 한 것”이라며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찾아냈고, 당연히 배우로서 해야 하는 것을 했다”고 강조했다.

“아름답게 보여야하는 역할이면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려 뭐라도 했겠죠. 근데 기본적으로 여배우라고 해서 모두 아름다운 역할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가 솔직히 전형적인 미인도 아니에요. 제 얼굴은 이미 다들 너무 잘 알고요. 최상의 컨디션은 광고에서 다 보여주잖아요? 영화하면서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배역에 맞게 변신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김혜수라는 배우의 특수

영화 ‘깜보’(1986)를 시작으로 배우 인생을 걸은 지 어느덧 30년이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이가 또 있을까. 드라마와 영화 각각 30여편을 찍었다. 놀랍게도 공백 한 번 없었다. 그러나 김혜수는 “힘든 순간은 수시로 있었다”고 고백했다.

“요만한 일로도 힘들고 이만한 일로도 힘들고…. (스스로) 아는 경우도 있는데 모르는 경우가 더 많죠. 슬럼프는 계속 활동을 하고 있으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근데 크고 작게 아주 많았고요. 수시로 있었어요. 그 기간이 굉장히 길었던 적고 있고요.”

대중이 보는 김혜수는 늘 톱스타다. 연예계 많은 별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 중 하나다. 그는 “정말 그렇게들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표정엔 얼핏 씁쓸함이 비쳤다.


“저는 항상 여유 있고, 즐겁고, 일을 즐기면서 하고 그런 이미지인 것 같아요. 근데 정말 ‘내가 배우로서 이 순간을 정말 즐기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는 굉장히 잠깐이에요. 그게 자주 오지도 않고요.”

“그 잠깐이 계속 다시 일하게 하는 힘이 되느냐”고 묻자 김혜수는 “그 순간의 강렬함보다는 아직까진 다른 게 더 큰 것 같다”고 답했다. 그 원동력이 대체 뭐냐고 답변을 재촉했다. 그는 “이건 김혜수라는 배우의 특수이기도 하다”면서 얘기를 이어갔다.

“워낙 어릴 때 시작을 했잖아요. 우연히 일을 하게 됐다가 특별한 사람들 틈에서 신나게 성장했죠. 꽤 오래 연기를 했는데 어느 날 보니 배우로서 내적인 건 많이 갖춰지지 않았고…. 배우로서의 자질이 뒤늦게 조금씩 생기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 인생에서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가장 성장을 많이 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던 시기에 내가 한 일, 최소한 그 시간에 대한 의미를 찾아야하는 게 아닌가.’ 거기서 출발한 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끊임없이 깨달음을 갈구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70여편이 넘는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그가 늘 새로울 수 있는 이유다. 이번 작품에선 까마득한 후배 김고은과 호흡을 맞추며 “감동하고 놀랐고 좋았다”고 했다. 그 역시 김혜수에겐 또 다른 자극제가 됐다.

“전 수시로 자극을 받아요. 또 받길 원하고요. 그래야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피가 확 도는 것 같아요. 전 그게 좋아요.”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