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다겸 기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청소년들이 휴대전화와 인터넷 등에서 음란물 등 유해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했다.
지난달 16일부터 시행된 개정안에 따르면 청소년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는 유해물 차단 수단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한다. 설치하지 않는다면 이동통신사 가입이 불가하다.
개정안 시행 후 한 달이 지났다. 청소년들은 유해물 차단 애플리케이션(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알고 있다”며 “성인물과 같은 유해물을 차단하는 앱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해당 앱이 가지고 있는 기능은 유해물 차단이 전부가 아니다.
부모들은 이 앱을 통해 자녀의 위치를 조회할 수 있고, 스마트폰의 사용시간을 제한할 수도
있다. 또 자녀들이 웹에서 어떤 내용을 검색했는지, 어떤 앱을 사용하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폭력(욕설, 따돌림, 협박)으로 의심되는 문자들을 감지해 부모에게 연락이 가기도 한다.
아직 개정안을 시행한지 얼마 안됐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해당 앱을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앱에 포함된 여러 기능을 듣고는 “우리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부모님들이 너무 사소한 것까지 아시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앱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 A양(15)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가장 싫다”고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밤 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제한을 걸어두셨다. 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길 수도 있고,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 게임을 할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못하게 하니 불편하다. 또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면서 가벼운 욕 같은걸 하기도 하는데 부모님에게 문자가 간다. 모든 걸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B양(15)은 “부모님들 세대는 우리랑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다르지 않나. 내가 아이돌 가수를 자주 검색하는데 부모님이 그걸 아시면 혼내실 것 같다. 내 소유인 스마트폰으로 내가 궁금한 걸 검색도 못하게 된다는 건 정말 끔찍하다. 그 앱을 무조건 깔아야하는 거라면 새로운 휴대전화로 바꾸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유해물 차단 기능에 대해서 크게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솔직한 대답을 내놓은 학생도 있었다. “이 인터뷰 익명으로 하는 거 확실하죠?”라고 물은 C군(15)이다.
“우리 나이에 성인물을 보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한 번도 안 본 학생이 어디 있어요. 어른들도 학생이었을 때 다 봤을 것 아니에요. 저희들도 궁금하니까 단어나 이런 걸 검색 해보고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걸 부모님이 아시면 많이 창피할 것 같아요. 저희 나이에는 궁금한 게 당연한 거잖아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D군(15)은 “부모님께 말씀 안 드리고 친구들이랑 PC방에 가거나 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 하나하나까지 제한 받을 생각을 하니까 답답해요”라며 위치정보조회 기능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해당 앱이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교문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고 있던 학부모 E씨의 의견은 달랐다.
“내 생각에는 좋은 앱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설치를 권장하더라고요. 강제는 아니지만. 사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사춘기라 호기심이 많고 자제력이 떨어지잖아요.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앱을 설치하면 아이들이 유해물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또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앱을 설치한 일부 청소년들은 인터넷에 “친구에게 연필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친구 부모님께 ‘갈취가 의심된다’는 문자가 갔다”, “메신저에 ‘조롱박형 스폰지’라고 썼더니 ‘조롱, 괴롭힘 의심’으로 엄마 폰에 떴다”는 등의 황당 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모든 앱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한 통신사에서 내놓은 앱에서만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며 “후기가 올라온 이후 해당 통신사에 따로 연락해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스마트 보안관’ 앱에서는 자녀가 어떤 사이트에 들어갔는지, 어떤 것을 검색했는지 부모가 알 수 있게 하는 기능은 없앨 예정이다. 현재 신규 가입자에게는 이런 기능을 아예 사용할 수 없게 해 놓은 상태다. 다만 기존 가입자들에 대해서는 이용했던 기능을 갑자기 없애면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해당 기능을 없앤다고 공지를 띄워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plkplk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