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쓰러졌지만… 계속 류현진 안고 가는 NH농협이 노리고 있는 것은 [조현우의 PPL]

괴물 쓰러졌지만… 계속 류현진 안고 가는 NH농협이 노리고 있는 것은 [조현우의 PPL]

기사승인 2015-06-01 15:56:55

[쿠키뉴스=조현우 기자]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 그런데 본인이 엎지르지도 않은 물을 무조건 주워 담아야 한다면 어떨까. 이것만큼 억울하고 짜증나는 일도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망은커녕 묵묵히 주워 담아야만 할 때가 있다. 어깨 수술로 올 시즌을 마감하게 된 류현진(28·LA 다저스)을 모델로 기용한 NH농협 이야기다.

류현진은 지난달 22일 어깨 관절 와순 손상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사실상 시즌 아웃이다. 류현진은 수술을 받은 직후 “재활을 열심히 해서 내년에 돌아오겠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지만 투수에게 있어 심장과도 같은 부위라 불안감이 크다. 길고 긴 재활과의 싸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류현진 공백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선수 본인 지갑이다. 류현진은 170이닝을 돌파할 경우 10이닝마다 25만 달러(약 2억73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게 돼 있다. 그래서 192이닝을 던진 2013년에는 연봉 333만 달러(약 36억원) 외에 추가로 75만 달러(약 8억2000만원)를 더 챙겼다. 보너스가 날아간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5년간 750이닝 이상을 던지면 6년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아도 FA(자유계약선수)를 선언할 수 있는 류현진은 대박의 꿈도 미뤄졌다.

선수 본인 다음으로 치명상을 입은 곳은 국내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MBC스포츠플러스다. 추신수(33·텍사스 레인저스)와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리츠)가 건재하긴 하지만 야구 생중계 특성상 가장 상업성이 높은 포지션은 선발 투수다. 타자가 한 타석에 머무르는 시간을 1분으로 가정할 때 추신수와 강정호는 한 경기에서 5~6분 남짓 클로즈업을 받는 반면 류현진은 6이닝만 던져도 18분 이상을 보장받는다. 공격과 수비가 반복돼 시청자들의 몰입도와 하이라이트 편성 효율도 훨씬 높다. 실제 류현진이 평일 등판할 때는 2~3억원, 주말에는 최대 10억원 가까운 광고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류현진 낙수효과’ 공백은 광고주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렸다. 류현진은 NH농협, 오뚜기, 시원스쿨, 하나투어 등과 광고 계약을 맺었다. 무뚝뚝하면서도 코믹한 이미지에 스포츠 선수 특유의 역동성, 해외 진출이라는 국위 선양 이미지까지 곁들여 ‘류현진 CF’는 나오는 족족 대박을 쳤다. 하지만 광고 모델이 휴업 상태라 올해는 전략 자체를 다시 새로 짜야 할 판이다.

지난해 류현진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재미를 톡톡히 본 NH농협은 일단 ‘보듬기’ 콘셉트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 효과가 워낙 탁월했기 때문이다. 류현진과 2년 계약 직후 농협은 한 설문조사에서 은행 브랜드 선호도 1위, 브랜드 상기도 2위로 뛰어올랐다. 류현진 승수에 따라 우대 금리를 주는 ‘류현진 정기 예·적금’은 2000억원이 3개월 만에 완파돼 추가로 3000억원을 더 판매하는 수혜를 누리기도 했다. 실제 14승을 거둔 류현진은 가입자들에게 0.3% 우대 금리를 가입자들에게 안겨줬다.

하지만 류현진이 시즌 아웃된 올해는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류현진 활약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고사하고 부상 중인 광고 모델을 활용하는 소위 ‘플랜 B’를 세우는데 비상이 걸렸다. NH농협은 부상 쾌유에 포커스를 맞췄다. 류현진 응원 메시지를 남긴 1004명에게 사인볼을 주는 이벤트를 6월 한 달간 펼친다. 류현진이 등장하는 광고도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재기하는 의지를 담은 이미지와 문구로 바꿀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광고 모델의 신상에 변화가 생기면 광고주는 책임을 묻는다. 계약 해지는 물론 위약금을 청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NH농협은 류현진을 계속 안고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류현진 정기 예·적금’에 4000억원이 넘게 몰려 있다. 류현진이 올 시즌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시즌 아웃돼 우대 금리를 제공할 부담이 사라진 상황에서 자칫 류현진을 홀대할 경우 토사구팽 했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류현진 다승에 우대 금리를 기대한 가입자들이 많았을 텐데 오히려 ‘위로·응원 금리’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낸다면 어떨까 싶다”고 조언했다.

내년에 류현진이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을 경우를 가정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국민 응원 콘셉트로 올해로 광고 계약이 만료되는 류현진의 마음을 얻어 장기 계약을 추진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광고 모델 부재를 ‘위기 마케팅’으로 풀어내는 방식인데 특히 스포츠 선수들 재계약에 효과가 있다는 평이다.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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