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망] 바셀린을 콧속에 바르면… 급속도로 퍼진 ‘이상한 예방법’ 과학적 근거 없어

[메르스 사망] 바셀린을 콧속에 바르면… 급속도로 퍼진 ‘이상한 예방법’ 과학적 근거 없어

기사승인 2015-06-02 16:32:55

[쿠키뉴스=조현우 기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망자가 2명이나 발생하는 등 공포가 현실이 된 가운데 온갖 괴담과 낭설이 떠돌고 있다. ‘메르스 예방법’이라는 게시물이 대표적이다.

2일 SNS를 중심으로 ‘메르스로부터 내 몸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글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코에 바셀린을 바른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자신을 “공공기관 제약관련부서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중동 출신 전문가가 알려준 방법”이라며 “바이러스를 피하는 가장 쉽고 값 싼 방법은 바셀린을 콧속에 바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독감, 감기, 비염 등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도 콧구멍에 바셀린을 바른다”며 “알레르기, 바이러스 등은 수용성이고 호흡기를 통해 쉽게 전염이 되는데 바셀린은 지용성이고 ‘sticky substance’(끈적거리는 물질)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체내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글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박병주 대한보건협회장은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론적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바셀린이 기도를 완전히 막을 수도 없고 숨을 쉴 텐데 그에 바이러스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메르스 환자에 접근하지 않는 게 우선이고 손을 자주 씻어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온라인은 분노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메르스 사망자들이 모두 보건당국 방역망에서 빠져 있다가 결국 사망했고 3차 감염까지 현실로 나타나자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정부를 성토하는 게시물이 쇄도했다.


국민안전처는 실시간으로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이날 한 매체가 안전처 담당자를 인용, “지금은 범국가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심각한 단계는 아니다”라며 “신종플루 같은 경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300만명 정도 감염됐을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을 가동했다. 지금은 중대본을 가동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안전처는 국가 재난단계도 현 단계인 ‘주의’ 상태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국가 재난단계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으로 구분된다. 중대본이 구성되면 안전처 장관이 본부장을 맡고 전염병 관련 예방, 대응, 업무조정 등 통합 관리를 하게 된다. 또 전국 16개 시·도와 230개 시·군·구에서도 단체장을 본부장으로 한 별도 대책본부가 가동돼 대책 마련에 나서게 된다. 정부는 2009년 신종플루 확산 당시 중대본을 가동했다. 당시 11월 들어서면서 하루 1만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재난단계를 ‘심각’ 수준으로 높이고 중대본을 꾸렸다.

이를 두고 SNS에선 ‘신종플루와 치사율 자체가 다르다’ ‘치사율이 40%라는데 120만명 죽고 나서야 심각하다는 건가’ ‘정신 나간 정부’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메르스 핫라인(043-719-7777)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기존 에볼라 바이러스 핫라인으로 사용했던 이 전화번호는 일단 연결 자체가 쉽지 않다. “모든 회선이 통화중이다. 다시 걸어달라”는 코멘트만 반복됐고, 난데없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동참을 호소하는 음성이 나온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 사망자까지 발생했지만 방역과 관리를 맡은 보건당국은 공식 발표를 수차례 번복하며 여론 불신을 자초했다. 3차 감염을 막겠다는 약속이 대표적이다. 당국은 지난달 25일 보도자료에서 “환자와 접촉했으나 증상이 없는 사람은 자가 격리를 하면서 증상 발생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자가 격리만으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9일 “보건복지부가 전사적으로 달려들어 3차 감염이 없게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가 31일 “만약 3차 감염자가 발생한다면 조기 발견해서 치료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2일 사망자 2명과 3차 감염자 2명이 동시에 발생하자 당국은 “민관합동대책반은 3차 감염 사례를 의료기관 내 감염으로 (판단하며), 지역사회로 확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3차 감염을 막겠다고 했다가 발생하자 지역사회 확산은 아니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선 셈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방역 초기 ‘낙타와 접촉 금지’를 메르스 예방법으로 주로 홍보한 것도 질타를 받고 있다. 네티즌들은 ‘대체 낙타를 몇 명이나 만난다고’ ‘감염 지역과 병원이나 알려달라’ ‘낙타만 조심하면 안 걸리나’ 등 성난 반응을 쏟아냈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 당시 낙타고기 요리 일화도 희화화 됐다. 당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중동순방에 얽힌 뒷얘기를 공개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모하메드 왕세제와 카타르 타밈 국왕은 공식오찬을 대접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낙타고기 요리를 내놓았다. 청와대는 “UAE와 카타르 정상이 오찬메뉴에 최고의 환대 의지를 담은 것”이라며 낙타가 운송수단이자 귀한 식재료로 쓰이는 중동에서 손님에게 낙타고기 요리를 주는 것은 전재산을 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트위터에선 ‘대통령부터 검사받아야 할 듯’ ‘낙타고기 먹고 이제 와선 조심하라고 하나’ 등 비아냥이 이어졌다.

경찰이 지난달 30일 꺼내들었던 형사처벌 카드도 조롱을 사고 있다. 경찰은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나 괴담을 퍼뜨릴 경우 보건당국의 의견을 들은 다음 업무방해나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2명이 사망하고 25명이나 감염돼 전파 가능성을 경고하는 일부 게시물은 현실이 됐다. 전염병 소재 영화인 ‘컨테이젼’ ’감기’ ‘연가시’ ‘월드워Z’ 등이 계속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민심은 이미 겉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정부를 성토하는 게시물들이 세월호 참사 당시 못지않게 쏟아지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결국 사망에 이르렀는데도 국회법 개정안에 골몰하는 정치권을 향한 시선도 싸늘하다.


영문 알파벳과 이니셜이 뒤섞인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도 이어졌다. 현재 대다수 언론들은 감염 순서와 병원에 따라 알파벳을 부여해 보도하고 있다. 워낙 지칭할 대상이 많아 나온 고육지책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각종 표기가 뒤섞여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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