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내 기억 못 믿어”…신경숙, 비겁한 거짓말쟁이일까, 가련한 ‘헐리우드 키드’일까

[친절한 쿡기자] “내 기억 못 믿어”…신경숙, 비겁한 거짓말쟁이일까, 가련한 ‘헐리우드 키드’일까

기사승인 2015-06-23 13:26:55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표절 논란’에 휩싸인 신경숙(52) 작가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과 ‘전설’(1996)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응하지 않겠다”고 일축한 첫 입장 표명과 비교해보면 자신의 문장이 표절이란 걸 어느 정도는 인정한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표현이 모호하다보니 여전히 말이 많습니다. ‘이게 인정하고 사과한 게 과연 맞느냐’는 비판도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신 작가는 인터뷰에서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말을 했는데요.

저처럼 30대 중반의 독자라면 중학생이었던, 약 20년 전(1994년) 작품인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떠올릴 분들이 있을 겁니다. 원작은 1992년 안정효의 소설입니다.

저 역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느 명절 연휴 때 특집으로 TV에서 방영을 해줘서 봤고, 어린 나이에 꽤나 충격적이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임병석(최민수 분)은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자랑하는 고등학생입니다. 헐리우드 영화에 너무나 빠져들어 가끔은 현실을 모르고 허공에 둥둥 떠서 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임병석이 청산유수처럼 풀어내는, 당시로서는 접하기 힘든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소식은 친구들을 잡아 당깁니다. ‘헐리우드 키드’로 통하죠. 윤명길(독고영재 분) 역시 이 헐리우드 키드에게 매료된 친구 중 1명입니다.

세월이 흘러 둘은 성인이 되고, 윤명길은 충무로의 B급 영화감독으로 살아갑니다. 윤명길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듯한 임병석을 다시 만나게 되고, 임병석은 윤명길에게 자신이 직접 썼다는 시나리오를 한 편 건넵니다. 괜찮은 작품 하나 없이 2류 영화감독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윤명길은 임병석의 치밀하고 세련된 시나리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고, 임병석은 청룡영화제 각본상을, 윤명길 감독의 영화 ‘가면고’는 작품상을 수상합니다.

그러나 윤명길은 기쁘지 않습니다. 시상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모처에서 분노로 가득 찬 채 TV로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미 임병석의 시나리오가 온갖 헐리우드 영화의 대사들을 짜깁기해 놓은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죠.

자신을 질책하는 윤명길에게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절규처럼 던진 임병석의 말은 마치 현재의 ‘신경숙 논란’을 예상이나 한 것처럼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그래, 다 인정할게. 하지만 하나 만은 알아줘. 난 다 내가 쓴 줄 알았어. 나도 나 자신에게 속은 거라고. 이 임병석이 헐리우드 키드에게 속은 거라고!”

사람이 뭔가에 아무리 빠져든 채 살아간다 해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지인인 심리학 교수에게 물어보니 감정이입이 심해지면 이런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는 합니다. 만일 신 작가가 이런 경우라면 필사를 통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감정이입이 과도해지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을 수 있다는 분석도 하더군요.

하지만 신 작가의 해명을 그저 자기변명으로 보는 시각도 여전합니다.

정문순 문학평론가는 23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나와 “스스로가 약자인 것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비난했고, 신 작가를 검찰에 고발한 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다면 취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던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신씨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은 사과가 아니었다. 표절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변명을 하는 느낌”이라며 취하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문단계의 거목에서 한낱 위선자로 추락할 위기에 놓인 신경숙. 그저 자기기만에 사로잡힌 거짓말쟁이일까요, 과도한 몰입의 마귀에 집어 삼켜진 헐리우드 키드일까요. afero@kmib.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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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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