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극인들 “우린 죽어서 천국 갈 거야. 김밥만 먹어서…”

[기획]연극인들 “우린 죽어서 천국 갈 거야. 김밥만 먹어서…”

기사승인 2015-06-26 05:00:55

또 한 명의 예술인이 무관심 속에 세상을 떠났다. 연극배우 고(故) 김운하(본명 김창규·40)다. 풍운의 꿈을 안고 시작했을 연기 인생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에게 남은 건 생활고와 그로 인한 지병이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관객들을 맞이하던 고 김운하의 마지막은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이었다.

스물여섯의 나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그는 숨지기 전까지 꾸준하게 연극 활동을 해왔다. 일반 직장인에 비유하자면 업무 경력이 꽤 쌓여 수입도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할 시기다. 하지만 그는 극단에서 약 3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요즘 같은 시대, 그것도 서울에서는 생계가 불가능한 금액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은 비단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 김운하의 사망 소식이 보도된 후 찾은 평일 대학로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청테이프로 이어붙인 기타를 연주하며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는 음악인과 어떤 연극을 봐야 할까 고민하는 커플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 곁을 지나가는 20대 후반 연극배우 이모씨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전날 아르바이트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극단에 나가 연습을 해야 하는 탓이다.

대본으로 보이는 종이를 한 손 가득 쥐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던 그는 “과로에 정신을 반 정도 놓고 다니는 건 일상에 가깝다”며 “생계를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루를 쪼개고 잠을 줄이며 아르바이트와 극단 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던 힘은 연극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씨는 “이런 생활마저도 끝이 보이는 것 같다”며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하루에도 수십 번 ‘연극을 그만두어야 하나’하는 갈등에 휩싸인다”고 전했다. 그는 “가족들의 눈치와 안정적인 삶을 사는 친구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얼굴에 세월이 느껴지는 중견급 배우들의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40대 김모씨는 “이른바 ‘연극물’을 먹을 대로 먹은 나이의 배우들은 일하고 싶어도 채용해 주는 곳이 없다”며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면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을 지금도 꿈꾸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뤄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솔직히 고 김운하 배우의 일이 남 일 같지 않다. 이런 생각을 많은 배우가 할 것이다. 관심은 비극적인 상황이 언론에 보도될 때만 받을 수 있다”며 “고 김운하 배우의 안타까운 사연도 곧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 달라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연극 연출과 극단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연극협회 임선빈 사무국장은 “연극인들이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린 죽어서 천국 갈 것이다’라는 말이다. 착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김밥천국’이라는 분식 브랜드 있지 않나. 거기 김밥이 가격이 저렴하니까 너무 많이 먹어서다”라고 말하며 자조 섞인 웃음을 보였다.

임 사무국장은 이어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연극계의 구조적 문제가 보인다. 순수 창작극 같은 경우에는 투자자를 구할 수 없다. 정부의 지원은 당연히 없다. 대학로에서 막이 오르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이 연출가와 연기자 스태프들이 아르바이트해 십시일반 돈을 모으거나 빚을 내 만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관객이 좀 모인다는 연극 작품들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익에 대관료 등을 제하면 인건비는 거의 남지 않는다. 연극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이들이 일을 해 돈을 보태면서 대학로 연극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예술인복지법’의 실효성에 관한 지적도 이어졌다.

임 사무국장은 “‘예술인복지법’은 무용지물에 가깝다”며 “3년에 3편 이상 프로 무대 활동을 해야 지원을 한다는 정책은 다시 말해 3년간 대가 없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밝혔다.

또 “연극인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사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어떤 복지를 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대한민국 연극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정책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것이 실행되지 않는 이상 고 김운하 배우와 같은 비극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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