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대학원생 박 모씨(24)는 얼마 전 연인과 함께 한 프랜차이즈 피자가게를 찾았다. 식사를 하는 도중 박 모씨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고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다른 손님이 개를 데리고 식당에 온 것이다. 황당해진 박 모씨는 점원에게 개가 식당에 들어오는 건 너무 하지 않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손님더러 나가라고 할 수는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 뿐이 아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지난달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어떤 관람객이 애완견을 데리고 영화관에 입장했다는 게시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저도 애견인이지만 개를 밀폐된 공공장소에 데려가는 건 너무하다” “어쩔 수 없어서 데려왔을 거다”라는 등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애완동물 출입 규정, 대중교통은 있는데 음식점은 없다?
이 해묵은 논쟁거리가 풀리지 않은 이유는 명확한 관련 규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현행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음식점에 애완견 출입 여부에 관한 조항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점주들의 재량에 따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교통은 다르다.
버스나 지하철, 택시의 경우 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라 애완동물을 애완동물 전용 가방에 보관해야 승차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대중교통보다 위생·청결이 더 중요한 카페나 음식점이 오히려 ‘점주의 재량’이라는 막연한 관행에 의존해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 애완인구가 1000만 명을 훌쩍 넘으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증가하고 있다.
손님과 손님 사이에서 난감한 카페 주인
가장 필요성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카페나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는 손님들 앞에서 사면초가에 빠진다.
이태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 황 모씨(46)는 “카페에 애완동물이 들어오면 다른 손님들이 털이 날려서 싫어하거나 무서워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테라스에 안내를 하거나 못 돌아다니도록 부탁을 드린다”며 “그런데도 가끔 애완동물이 카페를 돌아다녀서 다른 손님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와 정중하게 말씀을 드려도 탐탁치 않아하는 손님들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털어놨다.
홍대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 모씨(27)도 “솔직히 애완동물 데리고 온 손님도 손님인데 출입 안 된다고 말하기가 곤란하고, 다른 카페에서는 들여보내줬는데 여기는 왜 안 되냐고 하는 손님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는 되고 저기는 안 되고…애견인도 혼란스럽다
애견인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출입이 아예 금지된 곳, 작은 개만 출입 가능한 곳, 전용 가방에 넣으면 된다는 곳, 테라스에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하는 곳 등 기준이 가게마다 제각각 이다.
그래서 애견인들은 항상 사전에 다 일일이 알아보고 가야 한다. 이런 불편 때문에 애견전용카페를 이용하는 애견인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애견전용카페는 여전히 부족하다.
평일 낮 한 홍대 애견카페에 본인의 반려견과 함께 방문한 강 모씨(25)는 “일반 카페에 혹시라도 이용 가능 하다고 해서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 눈치 보기가 일쑤”라며 “솔직히 가끔은 반려동물 출입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닌데 왜 이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서도 보건상의 이유로 명확한 규정 마련
우리나라보다 반려동물 문화가 훨씬 오래된 미국 뉴욕의 경우 최근까지도 레스토랑에 ‘애완견 출입금지’ 법이 있었고, 야외 테라스까지는 허용되는 걸로 수정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보건상의 이유 때문에 주인을 동반하고, 목줄에 매여 있어야 한다. 또 일반 손님과는 다른 출입문을 이용해야 하고 식당 내부 출입은 불허되며, 음식이 조리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야외라도 들어갈 수 없다. 이렇게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이기 때문에 업주와 시민간의 난감한 상황이나 얼굴 붉힐 일이 적다.
식약처 식품정책조정과 나안희 서기관은 국내에 명확한 관련 규정이 없는 것에 대해 “각 음식점마다 위생 관리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반려견 출입에 대한 일률적인 규정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시민들의 생활패턴이 바뀌고 법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진다면 규정 마련을 위해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최 모씨(26)도 “애완견에 대한 호불호가 워낙 극명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차라리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마련해줘서 좀 더 떳떳하게 반려견을 데리고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애견인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진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jinyong0209@kukimedia.co.kr
사진=박효상 기자 islandcity@kukimedia.co.kr
장소협조=상상다방 애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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