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10년 전에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10개월 정도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어떻게 하다 보니 초등학생들도 아는 영어 단어에, 소위 표현해 ‘꽂힌’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정말’을 뜻하는 ‘Really’였습니다.
어느 날 주변 미국인들이 “really”라고 할 때 저처럼 ‘a’ 발음을 명확히 해서 “리얼리?”하지 않고 부드럽게 “릴리?” 혹은 “륄리?”하는 것이 괜히 멋있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굉장히 유치한 생각인데, 그땐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괜히 “리얼리?” 하지 않고 “릴리?”라고 해야 꽤나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일 거라고 여긴 겁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누가 저한테 무슨 말만 하면 “릴리?” “릴리?”하는 게 습관이 돼 버렸죠. 하도 그러다보니 친했던 미국인 친구가 좀 불쾌했나 봅니다. 어김없이 “릴리?” “릴리?” 거린 그 날, 같이 밥을 먹다가 약간 인상을 쓰며 “그래! 정말이라고! 너 왜 그래? 내가 말하는 건 다 거짓말 같아?”하고 따지더군요.
놀랍지도 않은 얘기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꾸 정말? 정말? 하고 되물으니까 기분이 좀 안 좋았나 봅니다. (사실 제 인상이나 눈빛, 말투가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을 때 상대방이 ‘온기’를 느끼는 스타일과는 정반대입니다)
제가 이유를 얘기해주니 그 친구가 “really?”하며 대소(大笑)를 하더군요.
이 사소하지만 재미있었던 ‘Really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 건 월스트리트저널(WSJ) 서울 지국장인 알라스테어 게일(Alastair Gale)입니다.
게일 지국장은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대통령이 자국 시위대를 IS에 비교했다. ‘정말’”(South Korea‘s president compares local protestors in masks to ISIS. Really)”이라고 적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다룬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 더 스트레이트 타임즈(The Straits Times) 기사 링크를 첨부하면서 말이죠.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지난 14일에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불법·폭력 시위)이 일어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고, 전 세계가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때에 테러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특히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슬람국가(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말했습니다.
시위 과정에서 과격한 행태가 있었다 해도 민중총궐기에 나온 시위 참가자들은 엄연히 자국의 국민입니다. 이들을 ‘복면’이라는 연결고리 하나로 살육적 테러를 자행하는 IS와 묶어버린 듯한 발언입니다. 근거는 ‘테러단체들이 시위에 섞여 들어올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입니다.
게일의 ‘정말(really)’은 상대방이 못 믿을 것이라고 예상할 만한 얘기를 전할 때 미리 강조하는 “정말이야”일 수도 있고, 기사 내용에 놀라 “정말?”하고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대통령이 복면을 썼다는 이유로 자국 국민을 세계가 분노하는 테러단체와 비교했다는 소식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라는 의미인 건 다르지 않습니다.
10년 전 그 미국인 친구에 이 이야기를 해주면, 혹은 이미 알고 있다면 그 때 제 앞에 앉아 그랬던 것처럼 “really?”하며 대소를 터뜨리지 않을까요.
P.S- 다 같이 먹고 살기 바쁘고 피곤한 세상에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쉬는 날까지 포기해가며 거리로 뛰쳐나와 그러는지는, 국무회의 같은 공식 석상에서 말하지 않았을 뿐 내심 치열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쿠키영상] '무한 샴푸' 아무리 헹구고 헹궈도 계속 나오는 거품...해수욕장 몰래카메라
[쿠키영상] 늑대에게 신체 일부라도 물렸더라면 '끔찍'
[쿠키영상] '아찔한 쩍벌춤'…섹시 걸그룹 '사이다' 선아 직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