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와 사이먼도미닉의 반응은 ‘쇼미더머니5’가 가사 실수에 얼마나 강박을 느끼고 있는지 드러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다섯 번째 시즌인 올해 ‘쇼미더머니’에서는 유독 래퍼들의 가사 실수가 잦다. 산체스는 공연 전 인터뷰에서 “가사 저는(실수하는) 사람이 떨어질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래퍼의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생각했던 가사 암기에 실패하는 장면이 반복되자 가사 실수 여부를 실력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뒤따랐다.
10년 이상 래퍼로 활동해온 래퍼 스내키 챈이 대표적이다. 스내키 챈은 2차 예선에서 두 번의 가사 실수에도 프로듀서 쿠시에게 “전체적인 분위기나 목소리가 너무 멋있었다”는 평가를 들으며 합격했다. 하지만 1:1 미션에서 또 가사 실수를 저지르자 심사위원들은 “랩이 항상 일정한 느낌”이라고 평가하며 탈락시켰다.
똑같이 가사 실수를 해도 누군가는 탈락하고 누군가는 합격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쇼미더머니1’에 출연했던 래퍼 진돗개와 미국 예선에 참가한 식보이는 예선에서 가사 실수로 곧바로 탈락했다. 하지만 YG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래퍼 원은 싸이퍼 미션에 이어 1:1 미션에서 연달아 가사 실수를 했음에도 무반주 상태에서 마지막까지 랩을 소화한 끝에 “독기가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합격했다. 이번 시즌 심사위원들에게 호평받은 래퍼 면도는 첫 대결에서 가사 실수를 했지만, 실수 없이 무대를 소화한 우태운과 동점을 받으며 4번의 재대결을 거듭한 끝에 상대를 제치고 다음 단계로 진출했다.
그 결과 ‘쇼미더머니’는 누가 가사를 잘 외우는지 경쟁하는 일종의 스포츠 경기가 됐다. 도끼가 그랬듯, 시청자들도 응원하는 출연자가 가사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며 방송을 지켜본다. 그래야 합격 안정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 실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자 랩 실력이나 개성 있는 목소리 톤이나 스타일, 화려한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는 그다음 문제가 됐다. 래퍼 킬라그램, 해쉬스완, 정상수는 독특한 색깔의 랩을 선보이며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지만, 결국 모두 탈락했다.
이번 시즌 ‘쇼미더머니’는 다른 시즌에 비해 큰 화제 없이 잔잔하게 진행되고 있다. 산체스 논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특유의 ‘악마의 편집’도 없었고 라이벌 구도도 없다. 바비나 송민호 같은 대형 기획사 출신 아이돌 래퍼도 없고 블랫넛 같은 문제적인 인물도 없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비와이는 지난해 ‘쇼미더머니4’에 출연했고, 씨잼은 ‘쇼미더머니3’에서 높은 곳까지 올라간 경험이 있다. G2는 하이라이트 레코즈에 소속된 기대주고, 플로우식은 그룹 아지아틱스로 2011년부터 세계무대에서 활동한 바 있다. 이미 알려진 래퍼들이 예상 범위 안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논란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래퍼들의 치명적인 가사 실수뿐이다. 물론 가사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랩 가사를 쓰고 외울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련한 래퍼라도 실수를 피하기는 어렵다. 가사 실수가 만들어낸 논란이 다시 실수를 더 부각시키는 구조다. 또 최근 가수들도 가사 외우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무대에서 가사를 볼 수 있게 돕는 프롬프터에 의존하는 추세다. 지난 1월 MBC ‘라디오스타’에서 윤종신이 “요즘 가수들은 프롬프터가 없으면 (노래를) 못한다”고 말하자 그룹 슈퍼주니어 규현도 “프롬프터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보느냐의 싸움”이라고 거들었다.
상처 입은 래퍼들과 볼거리를 잃은 시청자는 ‘쇼미더머니5’가 만들어낸 피해자다. 아마도 시청자들이 ‘쇼미더머니5’에서 보고 싶었던 건 래퍼들이 짧은 시간에 가사를 얼마나 완벽히 외우는지 증명하는 기인 열전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