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여자친구가 빗속에서 8번을 넘어지며 ‘오늘부터 우리는’ 무대를 끝냈을 때에도 그 순간이 여자친구에게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여자친구가 신생 기획사의 첫 아이돌 그룹으로 처음 데뷔했을 때 대중은 평범하고 특이한 이름과 그때까지는 생소했던 콘셉트에 몇 번 눈길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 여자친구가 데뷔 1년 6개월 만에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아이돌에게 ‘정규앨범’이란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의미한다. 어느 정도의 성공일까. 여자친구의 새 타이틀곡 ‘너 그리고 나(NAVILLERA)’는 발매 후 각종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100위 이내의 음원 차트에는 아직도 지난 1월에 발매한 ‘시간을 달려서’가 존재한다.
그런 여자친구가 11일 0시 정규앨범 ‘엘오엘(LOL)'을 발매하고 같은 날 오후 4시 서울 구천면로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열었다. ‘학교 3부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발매한 첫 정규앨범이기에 관심은 뜨거웠다. 이 자리에서 가장 처음 거론된 것은 역시 음원성적에 관한 것이었다. 여자친구는 유주는 “어젯밤 퇴근하면서, 오늘 이동하며 차 안에서 잠시 음원 차트를 확인했다.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는 성적이다”라고 음원 1위 소감을 밝혔다.
여자친구는 “1위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질문은 ‘성공한 여자친구’에 집중됐다. ‘여자친구가 걸그룹의 계보를 바꾸고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며 “현재 저희의 위치는 아직 올라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리더 소원은 ‘유리구슬’,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로 이어지는 전작의 성공에 대해 “많은 분들이 저희 노래를 모두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이번 앨범을 준비할 때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며 전작의 성공이 부담으로 작용했음을 밝혔다. ‘학교 3부작’에 대해 “무엇 하나가 좋아서 잘 됐다기보다는 좋은 노래와 안무에 저희도 열심히 한 것이 모두 어우러져 대중이 좋게 봐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원은 “준비하면서 힘들 때면 ‘네가 약해지면 다음에 나갔을 때 많은 분들이 실망할 수 있다’는 대화를 하며 멤버들끼리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이날 예린은 소화하기 가장 힘든 곡으로 ‘오늘부터 우리는’을 뽑으며 “무대에서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동작이라 매 무대마다 긴장했다. 덕분에 단합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엄지는 “무대 안무가 다 힘들긴 하지만, 곡마다 표현해야하는 느낌도 다르고 소비하는 체력이나 감정이 달라서 각자마다 고충이 있었다”며 “아무래도 지금은 ‘너 그리고 나’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멤버 모두에게는 ‘너 그리고 나’가 어려우면서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유주는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24시간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답해 여자친구의 남다른 의지를 드러냈다.
작곡가 이기용배와 연이은 작업을 하는 바람에 노래가 전반적으로 비슷한 콘셉트라는 의견에 대해서 여자친구는“오히려 그것이 저희만의 색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소원은 “데뷔하면서 목표를 이야기 할 때 ‘여자친구만의 색을 보여드리는 게 목표’라고 얘기했다”며 “어떻게 보면 데뷔 때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 3부작을 화려하게 끝내고 새로운 장을 여는 여자친구는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그룹 신화 선배들처럼 끝을 정해두지 않고 멤버 누구의 이탈도 없이 이 멤버들과 오래오래 음악을 계속 같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엄지는 “성공 목표에 대한 답은 이번 저희 노래 가사 ‘다시 선 시작점이야’에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디까지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늘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많은 분들께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여자친구는 아무도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던 그룹에서 누구나 성공을 예상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역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준비된 상태에서만 찾아오기도 한다. 여자친구는 준비된 상태에서 자신들에게 온 기회를 잡았다. “데뷔 앨범처럼 준비해야 똑같이 사랑받는다는 믿음으로 이번 앨범도 데뷔 앨범처럼 준비했다”는 여자친구는 새로운 기회를 잡아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을까.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