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감독 김한민), ‘암살’(감독 최동훈), ‘베테랑’(감독 류승민) 등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의 공통점은 여름에 개봉했다는 것입니다. 제작 규모가 크고 많은 자본이 투입된 대작 영화라는 점도 공통점이죠. 영화계에서 여름은 일 년 중 큰 성수기입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시원하고 통쾌한 한방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극장가 여름 경쟁이 뜨겁습니다. 20일 ‘부산행’(감독 연상호)이 개봉했고 27일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 다음달 3일 ‘덕혜옹주’(감독 허진호) 등 대형 배급사의 기대작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외화인 ‘제이슨 본’도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1000만의 꿈을 꾸는 영화가 줄이어 개봉하는 만큼 여름 극장가 마케팅 또한 뜨겁습니다. 각 배급사가 자존심과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올여름 극장가의 승자는 누가 될지 아직 섣불리 예상할 수 없지만, 20일 개봉한 ‘부산행’이 개봉 4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야말로 쾌속질주 중입니다.
‘부산행’은 공유, 정유미, 마동석 등 인기 배우가 출연하고 ‘돼지의 왕’, 사이비‘ 등 애니메이션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화제작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좀비 소재의 블록버스터라는 점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죠. 칸국제영화제 비공식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은 이후로 국내에서 ‘부산행’은 특급 기대작이 됐습니다. 언론 시사회 후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으며 올해 최초의 1000만 관객 영화가 되리란 예측도 많았죠. 그렇다면 ‘부산행’의 질주는 오로지 이런 호평과 호기심 때문에 가능했을까요.
많은 이들이 ‘부산행’의 흥행을 점쳤지만, ‘부산행’이 변칙 개봉을 하리란 것을 예측하지는 못했습니다. ‘부산행’은 정식 개봉을 하기 전인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일명 ‘유료시사회’를 진행했습니다. ‘부산행’ 유료시사회의 총 상영횟수는 총 2663회입니다. 시사회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많은 횟수입니다. ‘부산행’은 유료시사회 덕분에 개봉 전 56만 5614명의 관객을 누적했습니다. 유료시사회라는 교묘한 단어로 위장했지만, 이는 주말에 사전 개봉을 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 결과 ‘부산행’은 개봉 첫날 87만 239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누적 관객수로 따지면 개봉일에 이미 100만 관객을 돌파했죠.
유료시사회 명목으로 사전 개봉을 한 것은 ‘부산행’만이 아닙니다. ‘부산행’의 경쟁작인 ‘나우 유 씨 미’도 개봉 전 유료시사회를 진행했습니다. 과거 여름 극장가의 대작들도 변칙적인 사전 개봉을 해 문제가 됐죠. 영화 ‘고지전’(감독 장훈)이 개봉을 앞당기고 유료시사회를 진행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풍산개’의 김기덕 감독이 공개적으로 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숨바꼭질’(감독 허정)도 경쟁작인 ‘감기’(감독 김성수)가 유료시사회로 관객을 동원하고 마케팅을 했다며 이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숨바꼭질’의 배급사는 NEW입니다. NEW는 현재 ‘부산행’의 배급사입니다.
NEW 측은 이번 유료시사회를 관객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산행’을 궁금해하는 관객이 많아서 대대적인 유료시사회를 진행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변칙 개봉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변칙 개봉, 스크린 독과점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은 소규모의 영화입니다. 유료시사회를 통해 실제적인 개봉일을 바꿀 수 있다면 대형 배급사의 영화를 피해 개봉일을 결정한 작은 영화는 다시 어디로 피해야 하는 걸까요. ‘부산행’은 공생(共生)을 말했지만, ‘부산행’이 가고 있는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