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파파라치] 폭염이 남긴 블루오션

[김시래의 파파라치] 폭염이 남긴 블루오션

기사승인 2016-08-23 17:22:39

며칠 전 최인아 선배(전 제일기획 부사장)가 책방을 오픈 했다. 선정릉 근처의 <최인아 책방>.

책방 오픈 날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내가 추천한 책들도 서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사실 흔한 책방의 모습은 아니었다.

우선 2층까지 탁 틘 구조라 이국적인 공간감이 눈길을 끌었다. 또 한 쪽에 커피와 차를 품위 있게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벽 한쪽 상단을 스크린으로 활용해서 인문 강좌를 열 수 있는 첨단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3면의 높다란 벽과 중앙 통로는 책 좀 읽는 다는 인사들이 추천한 책들로 꽉 채워져 있었고. 홀의 정면 앞쪽의 피아노는 책의 향기를 더해 줄 근사한 미장센이였다.

밥 먹고 사는 문제를 떠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그 분 다운 선택. 그러나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도대체 그 선배는 무엇을 보고 이런 책방을 연 것일까? 무엇인가 근거를 보셨을 텐데 그걸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책방에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며 문득 몇 일전 휴가철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들른 팔당대교 부근의 커피숍 <테라로사>가 떠올랐다. 그 곳은 원래 강릉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경기도뿐만 아니라 여의도나 강남 등 서울 곳곳에 들어서 있는 커피숍의 명소다.

테라로사의 특징은 한 마디로 탁 트인 공간감이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캘리포니아 농장 근처에 있는 커피숍 그대로의 느낌이랄까? 익숙하지만 다양한 느낌의 목가구들이 넓고 높은 실내 공간과 만나 커피 원산지 본토의 공장에서 마치 시음회를 하고 있는 듯 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연출되고 있었다. 세련되기만 하다면 반바지나 폴로 티셔츠를 입고 드나들어도 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연인들이나 모임을 갖는 중년들 외에도 아이들과 부부가 함께 찾는 가족 단위 손님들도 많았다. TV앞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마트의 시식 코너를 기웃거릴 사람들이 드라이브를 와서 맛 집을 찾아 간단한 식사를 하고 이곳에 와서 대화를 나누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혹시 최선배는 이곳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닐까? 커피 향내 그윽한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에서 한발 더 나가 책까지, 강의나 공연까지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 <문화가 있는 테라로사>를 꿈 꾼 건 아니었을까?
 
올 해 커피 전문점의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카페를 찾아 시간을 보내는 발걸음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폭염의 올 여름 , 안락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돈 안 드는 양질의 휴가법임을 깨달았다면 최선배의 세상 읽기는 순풍에 돛을 단 것이리라. <최인아책방>이 디지털의 경박과 감정노동의 피곤에서 벗어나 사색과 인문의 공간이 되길 기원한다. 물론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폭염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도 없고 예상하기도 싫지만.

조규봉 기자
ckb@kukinews.com
조규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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