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인세현 기자] 이소룡이나 성룡으로 대표되는 시절의 무술 영화는 일종의 기호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쌍절곤을 돌리며 묘한 추임새를 내거나 술을 마신 채 비틀거리는 인물과 그 정서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오마주나 패러디는 영화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체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영화 ‘대결’(감독 신동엽)은 1980년대 무술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자 패러디이며, 2016년 현피에 관한 이야기다. 현피란 최근 생겨난 신조어로 온라인의 싸움이 현실까지 번지는 경우를 일컫는다. 영화에 과거와 현재가 섞인 셈이다.
주인공 최풍호(이주승)는 한심해서 평범한 청년이다. 그는 극심한 취업난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돈 내기 현피를 통해 근근한 용돈벌이를 하며 산다. 풍호의 형인 최강호(이정진)은 그런 풍호가 한심하지만, 풍호를 아끼는 유일한 존재다. 형사인 강호가 잔인한 살인범을 잡기 위해 현피에 나섰다가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다. 범인은 게임 회사의 경영자 한재희(오지호)지만, 겉으로 성공한 경영자인 한재희가 범인이란 풍호의 주장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풍호는 은둔 고수인 황노인에게 취권을 배워 형의 복수를 결심한다.
오락 액션 영화를 표방하는 영화인만큼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끊이지 않고 액션이 이어진다. 액션 장면 자체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지만, 액션의 통쾌함은 살아 있다. 풍호가 복수를 위해 취권을 배워나가는 장면은 현실의 정서와 맞물려 제법 흥미롭게 전개된다. 영화는 어디서 본 듯 한 서사와 장면을 현실감 있게 풀어나간다.
‘대결’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처음으로 상업 영화의 주연을 맡은 이주승의 신선한 연기다. 이주승은 자칫하면 현실감을 잃고 우스꽝스럽게 부유할 수 있는 풍호 역을 재기 있게 살려냈다. 특유의 과장 없는 표현력은 ‘대결’에서도 유효했다. 풍호의 스승이자 조력자인 황노인을 연기한 신정근도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영화의 재미를 살렸다.
하지만, 배경 설정은 진부하고 관습적이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중적인 성격의 경영자 등이 그러하다. 풍호와 황노인이 등장해 취권을 연마하는 장면은 익숙함 속에 신선한 감각이 묻어나지만, 악역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흥미를 잃는다. 최근에 너무 많이 보아온 캐릭터와 장면이 거듭되기 때문이다. 서사의 전개 또한 너무 안일하다. 모든 사건은 쉽게 설명되고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연출을 맡은 신동엽 감독은 “취권 영화를 하고 싶어서 현피라는 소재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현재와 가장 동떨어진 것 같은 소재인 취권은 영화에서 충분히 흥미롭게 표현됐으나 그 외의 것들은 개연성 없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
유쾌하고 재기 있을 뻔한 21세기 취권 영화 ‘대결’은 최근의 한국 영화를 답습하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15세 관람가로 오는 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