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한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이 자사 드라마를 홍보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인기 토크쇼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 드라마 주연 배우들을 출연시켜 새 드라마를 알리는 일은 이미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장면이죠. 당연히 거쳐 가는 하나의 관례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종영된 지 5개월이 지난 자사 드라마를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로 삼는 일은 드뭅니다. 그런 이유로 지난 11일 방송된 KBS2 ‘해피선데이-1박 2일’(이하 ‘1박 2일’)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1박 2일’이 지난 4월 종영된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홍보하듯 방송 내내 다루자 ‘너무 우려먹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것이죠. 지난 4일 방송에서 현재 방영 중인 KBS2 수목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연 배우 박보검이 출연했지만 아무 문제없었던 것과 다른 양상입니다.
11일 방송의 여행 주제는 명작 드라마를 되새기는 ‘드라마 로드’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태양의 후예’ 특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오프닝부터 멤버들은 게임을 통해 의료봉사 팀과 파견근무 팀으로 나뉘었고, 헬기를 통해 강원도 태백에 위치한 ‘태양의 후예’ 세트장에 도착했습니다. 이어 드라마 명장면을 재연하며 복불복 게임을 한 멤버들은 드라마의 여주인공이었던 배우 송혜교와 전화 통화를 시도하기도 했죠.
이처럼 ‘1박 2일’이 ‘태양의 후예’를 다시 소환한 이유는 태백 세트장을 홍보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원 태백시는 ‘태양의 후예’ 세트장을 옛 한보광업소 1만7000㎡ 부지에 2억7000만 원을 들여 복원해 지난달 12일 개장했습니다. 드라마에서 특전사 알파 팀과 혜성병원 의료봉사단이 머물던 메디 큐브와 군 막사, 우르크 발전소 등을 복원한 세트장은 군용 트럭과 헬기까지 배치해 관광객을 모을 채비를 마쳤습니다. 개장 당일에는 가수들을 초청해 ’올웨이즈 태백 네버엔딩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 드라마 세트장은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복원될 수 있었습니다. 100% 사전제작으로 진행된 ‘태양의 후예’는 방송 전인 지난해 12월 이미 촬영을 마쳤습니다. 이후 엄청난 인기를 모을 줄 몰랐기에 촬영 세트장은 곧바로 철거되고 말았죠. 드라마가 방영되고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태양의 후예’를 “창조경제의 모범”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죠. 이에 태백시는 정부 지원금을 받아 20억 원 규모로 세트장을 복원할 계획을 세웠으나, 문화부가 국비 지원 불가 판정을 내리자 규모를 축소해 지금의 세트장을 완성한 것입니다.
드라마 세트장 건립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의미는 많습니다. 방송 콘텐츠를 관광 산업으로 확장시켜 드라마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제공할 뿐 아니라 지역 발전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세트장을 활용해 적은 제작비로 양질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기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드라마의 흥행을 보장하기 어렵고, 세트장의 유지비도 만만치 않기에 현실적인 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알고 보면 ‘1박 2일’ 측이 순수한 의도로 태백을 여행지로 설정했을 수 있습니다. 동아닷컴에 따르면 연출을 맡고 있는 유일용 PD는 “우려먹기로 보일 수 있지만, 지난주 ‘1박 2일’은 ‘드라마 로드’ 편으로 구성됐다”며 “예전에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부터 최근 흥행작까지를 총망라할 계획이다. ‘태양의 후예’는 큰 줄기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했죠.
문제는 자사의 인기 드라마가 얼마나 좋았는지, 얼마나 명장면이 많았는지 노골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입니다. 최근 개장된 세트장을 방문한 점도 방송사 측의 내부 지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드라마 세트장을 부각시키는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bluebell@kukinews.com